마지막 선물
마지막 선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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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의 주치의가 나의 뇌기능이 정지했다고 단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의 나의 목적과 의욕이 정지되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때, 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 자의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의 몸을 산 형제를 돕기 위한 충만한 생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로버트 테스트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중에서)

K형,

지난 달 설연휴, 전북 군산역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한 40대 가장이 뇌출혈로 인한 중태에 빠진 뒤 하루 만에 뇌사상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그의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 남편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 의사를 병원 측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병원 측은 기증 의사를 확인한 뒤 곧바로 이식 절차에 들어가 뇌사자의 간과 신장, 각막 2개를 만성질환에 시달리며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환자들에게 이식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아직도 장기기증이 흔치 않은 현실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여섯 명의 환자에게 새 삶을 주고 세상을 떠난 40대 가장의 아름다운 모습에 숙연해질 뿐이다”라는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K형,

자신의 각막을 기증해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눔의 가치를 실천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리는 장기기증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후(死後) 장기기증 희망자가 60만 명에 이르는 등 생명을 나누려는 운동은 전 국민의 참여 속에 크게 번지고 있지요.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바대로 1990년 1월, 강남성모병원을 찾아 ‘헌안(獻眼) 서약서’를 냈고 지난해 2월 16일 선종하면서 자신의 각막을 두 사람에게 이식, 소중한 빛을 이 세상에 남겼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59만여명으로 2000년 이전에 비해 12.6배나 증가했다는군요.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던 희망자는 2006년 9만여 명을 정점으로 차츰 줄어들다가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 영향으로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실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수에 비해 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의 실정입니다.

K형,

며칠 전 저는 아내와 교육방송을 시청하던 중, 우연히 ‘생명’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접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 가는 환자들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이 삶을 차분히 정리한 뒤 편안한 죽음으로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의 헌신적 사랑과 희생정신을 그린 프로였습니다. 그러나 시한부 생을 선고받은 환자들과는 다른 처지의 환자들, 이른바 장기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이 어쩌면 자신에게도 주어질 지도 모를 장기이식의 행운을 갈망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장면에서 저와 아내는 눈시울을 붉혀야 했습니다.

K형,

지금 이 시간에도 장기이식의 행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수많은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며 불안과 우울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장기이식만 성공하면 거의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들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서서히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 소중한 생명의 불꽃이 제대로 타오르지도 못한 채 꺼져 갈 때, 그 불꽃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할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을까요.

K형,

인간은 태어나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섭리에 순응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생의 시간표가 그 쓰임을 다하고 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당신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선물을 주고 떠나시겠습니까?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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