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파악을 못 해서야
주제파악을 못 해서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3.2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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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국어 수업에는 주어진 짧은 글을 읽고 중심 내용을 잡아보는 학습활동이 시작된다. 바로 주제(主題)를 파악(把握)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학습활동이다. 이런 학습을 교사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의 수업기술은 전적으로 교사의 국어과 수업 실력에 달려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쉬운 교과가 따로 있지 않고 모든 교과가 어렵지만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교과를 골라내라면 단연 국어과 수업이다. 단순히 제 나라 말을 가르치는 수업이니 쉬운 교과가 아니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단순 문자해득을 넘어선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국어과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이를 수업시간에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예술가적 창의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교과 학습활동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이어서 4학년쯤 되면 중심내용을 잡아 놓고 이 중심내용에 관계를 지어가며 여러 개의 문단으로 글을 쓰는 학습활동을 진행 시켜야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미국은 이런 일들을 대학에서 ‘작문’이라는 강의 명을 내걸고 다시 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교양 선택과목으로 학교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도 교양국어가 있으나 실제 운영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우리 대학의 교양국어 시간에 문학교육만 시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이런 국어기초훈련이 국민 보통교육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대다수 국민의 합리적 사고력, 주제파악능력이 다져진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심내용 잡기가 부실했던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어 어른으로 나이 먹고, 장군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어도 주제파악을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모 대통령의 참모회의에서 한 참모가 ‘각하, 각하에 관한 여론이 이러이러 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보고를 한 사람이 누구야?’ ‘각하,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뭐야? 그럼 당신이 지어낸 여론이잖아? 아니면 어서 밝혀!’ 그 참모는 어쩔 수 없이 보고자의 이름을 밝혔다. 보고한 사람은 다음 날 해직되었다.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눈길이 간다. 역시 주제는 염불인데 성실하게 염불 할 생각은 안 하고 뱃속 차릴 일에만 전념한다. 요즈음의 선거철에 입후보한 대다수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염불에는 관심 없고(허무맹랑한 공약 남발), 젯밥에만 관심이 가서(권력욕심 팽창)허망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달을 보라고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을 보고서 손톱에 때가 끼었느니 손톱이 길다느니 한다. 역시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날씨가 추우니 외투를 입고 외출하라고 타이르는데 외투의 색깔이 늙은이 색깔이어서 싫다고 그냥 나갔다가 추위에 떨어 감기 몸살을 앓게 되었다. 왜 외투를 입어야 하는가의 주제파악이 안 되어서 고통스러운 학습을 하는 것이다.

다시 국어교육의 중심 내용 잡기 부실함으로 돌아가서 그 원인을 따져본다. 우선은 글을 쓰는 사람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글을 써놓았는가?’이다. 다음은 읽는 사람이 중심잡기와 요약하기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읽는 사람이 자기가 힘들이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나열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까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맞춤법에 맞는지 틀리는지 자기가 알고 있는 맞춤법만으로 트집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의 손톱이 긴지 짧은지를 조사하는 격이다.

사실 맞춤법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쉼표(,)의 사용이다. 물론 우리의 필사본 춘향전에는 띄어쓰기도 없었으니 쉼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어의 수사학을 참고한 쉼표 사용의 규칙부터 약정해놓아야 주제파악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하긴 유명대학의 국문과 졸업생도 쉼표 사용을 멋대로 하고 있는 실정이니 주제파악 연습을 오늘 여기서 강하게 외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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