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장
아름다운 퇴장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3.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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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의 꿈을 접고 싶지 않았던 지역의 문예단체장 A씨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다 실천 못한 출마 때 공약이 맘에 걸리기도 하고,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한 지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연세도 되셨고, 후배들 생각해서라도 박수 받을 때 무대에서 내려오시는 게…?”

지인은 ‘모양새’와 ‘노추(老醜)’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듯 전화 끊는 말투는 보기 드물게 퉁명스러웠다. 그러던 그가 한 달 후 전화를 걸어 왔다.

“곰곰 생각해보니 전에 했던 당신 말 맞은 것 같소. 자리 욕심, 더 안 내기로 했소.”

속이 다 후련하다는 뒷말을 그는 남겼다. 속이 다 후련해지더라는 말을 지인도 털어놨다.

마지막 의정 무대가 될지도 모를 제126회 임시회 1차 본회의가 끝나고 회의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반백의 정객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공천 신청 이번에 안 하셨던데, 앞으로 어떻게…?”“그야, 조용하게 보내야겠지요. 정치는 젊은 후배들한테 맡기고.”

시의회 부의장까지 지낸 3선 경력의 송시상 의원(64·한나라당·동구1선거구).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것일까? 무욕(無慾)의 경지란 바로 이런 것인가!

표정이 그토록 밝은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스쳤다. 선비 기질 공직자의 조용한 퇴장! 아, 아름다운 퇴장이란 저런 걸 보고 하는 말이구나!

<입시 몰입 자율형 사립고에 반기…교단 떠난 이 아무개 교사>

24일자 중앙지 K는 10년간 국어를 가르치다 교단을 떠난 서울 어느 고교 전직 교사의 이야기를 1면에 실었다. <지난해 8월과 9월, 입시설명회를 유명 백화점 VIP룸에서 연 것을 보고 그는 학교가 구매력 있는 소비자를 위한 ‘명품’으로 변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가 부유층을 위한 ‘명품학교’로 변질되는 상황에 놀랐다는 그의 말도 곁들였다. “교육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정당화됐다. 참담했다.” 불혹(不惑)을 앞둔 그의 술회였다. 이후의 선택으로 보아 그는 ‘구차한 기생(奇生)’보다 가치 있는 ‘사회적 기부(奇附)’를 선호한 것으로 보였다.

“바둑 고수는 돌 던질 때를 안다.” “진정한 스타라면 박수 받을 때 무대에서 내려오라.”

말하기는 쉽지만 따라 하기는 무척 어려운 주문이다. 정치판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곧잘 도마에 오른다. ‘구설수’란 도마다.

울산에서 일파만파로 커진 선거여론조사 파문은 여론으로 하여금 돌을 던지게 만들었다. ‘완장’의 매력에 심취한 기초단체장들과 그 자리에 앉고 싶었던 지방의원 몇몇이 돌 세례를 받았다. 지켜보던 시민들 가운데 혹자는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하고 반문했다. 그 돌에 맞아서 죽어갈지 모르는 개구리(=’선의의 피해자’)도 생각해 보자고 연민의 정을 쏟기도 했다. 그래 맞아. 누가 누구에게 감히 돌 던질 자격이 있는데? 예수도 그런 말씀 하셨지.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이 여인을 돌로 치라.”

하지만 혹자는 그 반론도 만만치 않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어느 정당은 ‘뻔뻔스럽다’는 직설적 표현까지 구사하며 ‘즉각 사퇴’를 종용했다.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예외 없이 공천을 신청한 데 대한 정치적 포격이었다.

소문에 기초한 것이지만,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억울한 분도 있을 수 있다”는 동정론에 고개가 안 끄덕여지는 것도 아니다. ‘선별 구제’란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인가? 하지만 혹자는 아무리 이해해 주려 해도 ‘100%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지론을 편다. “법이 두 눈 부릅뜨고 살아있고 때가 어느 땐데, 그 정도 정치적 판단도 못하는 자가 어찌 정치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리다.

사건 연루 정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잘못의정도를 떠나 자숙하는 모습, 솔선해서 보여주면 안 되는가? 하다못해 ‘사과 성명’ 한 줄이라도….” ‘아름다운 퇴장’! 실천하긴 힘들지만 실천하면 더 없이 아름다운 것. 그것이 보고 싶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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