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정치… 최면정치…
이벤트정치… 최면정치…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3.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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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메이저급 중앙지들이 부산발 ‘김 아무개 사건’을 앞 다투어 대서특필하고 있을 즈음 기자회견을 막 끝낸 단체장 후보 K씨에게 한 정치부기자가 A 중앙지 1면을 가리키며 답을 구했다. 머리기사의 제목은 전국을 요동치게 만든 김 아무개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L양 어머니의 가슴 아픈 하소연에다 피울음까지 담았으리란 짐작을 낳았다. K 후보가 망설임 없이 답을 말했다.

“그거, 물 타기 작전 아닙니까? 세종시하고 4대강 문제 쑥 집어넣으려는…”

5공(5共) 초기에 ‘3S 정책’이란 게 있었다. 3S는 스포츠(Sports), 섹스(Sex), 스크린(Screen)의 머리글자를 딴 것. <위키백과>는 3S 정책을 이렇게 풀이했다. “제5공화국 정부가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한 여러 우민화(愚民化) 정책들을 묶어 이르는 표현이다.”

또 “인구에서 회자되다가 굳어진 표현으로 보인다”고 밝힌 위키백과는 “1983년 11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정수 의원이 당시 프로 스포츠의 지나친 열기를 지적하며 ‘전형적인 3S 우민 정책이 아닌가?’라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기술한다. 3S 정책은 일찍이 정치무대에서도 쓰였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정책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3S 정책’이란 “국민의 시야를 정치권 밖으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통치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객기를 조금 부려서 ‘3S 정책’에 ‘술래잡기(숨바꼭질) 정치’란 이름을 붙이고 싶다. 술래가 담벼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은 채 열을 헤아리는 동안 장독 뒤나 으슥한 곳,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어가 킥킥거리기도 하는 우리네 민속놀이에 ‘정치’를 한 번 대입시켜 본다면…. 허둥대는 술래의 모습을 은근슬쩍 즐기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에 고단수 정객들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지는 않는지? ‘술래잡기’ 대신 술래가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잡는 ‘봉사놀이(소경놀이, 판수놀이, 까막잡기)’란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선거철의 정치를 두고 ‘축제’니 ‘흥행’이니 단어를 붙이기도 하는 것은 요즘 정치가 이벤트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술래잡기 정치’ ‘봉사놀이 정치’ 따위의 ‘놀이 정치’도 거시적으로 보면 ‘이벤트 정치’의 한 갈래다. 정치는 일종의 놀이요 이벤트라는 가설도 그래서 성립한다. 놀이 정치, 이벤트 정치에는 솜씨나 기교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가 따로 없다.

‘이벤트 정치’를 울산의 정치판에서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요일인 지난 14일 오후 암각화가 가쁜 호흡을 토하고 있던 반구대에 거물 정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국보 제285호에 대한 관심이 근자에 부쩍 높아졌다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를 생애 두 번째로 방문했고, 울주군 출신이자 시장 출마설이 파다하던 한나라당 강길부 의원과 김기현 울산시당 위원장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명분은 ‘암각화 보존’이었다. 하지만 3선에 도전하는 박맹우 시장 진영에서는 안테나를 곧추세울 수밖에 없는 ‘천지 대사건’일 수도 있었다. 강 의원 캠프가 기획한 이벤트성 정치행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의 발언이 즉시 통신 뉴스로 전해지자 박 시장 캠프는 급박하게 돌아갔고, 미룰까 했던 출마 기자회견은 당장 다음날 오후로 잡혔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한참 앞에 두고서도 일부 메이저급 언론들은 김 아무개의 진범 단정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상 구형(紙上求刑)까지 내릴 태세다. 그 여파는 ‘사형폐지국’ 명예도 접겠다는 정부 결단으로까지 이어진다.

비록 특유의 동물적 감각이 탁월한 예단(豫斷)을 낳았다손 치더라도 상궤를 벗어난 감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사건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취급하지는 않던 관행이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 메이저 언론은 ‘정치적 술래잡기’의 마당을 제공해 줌으로써 ‘이벤트 정치’의 도구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메이저 언론을 앞세우는 ‘최면 정치’가 바야흐로 시작되는 건 아닌지? 그런 상념의 바람들이 정치판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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