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김병장에게
사랑하는 김병장에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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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김병장,

이곳 서울은 연일 춘설(春雪)이 분분히 날리고 있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인접한 출판사 편집실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눈 내리는 날의 풍경은 아담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지. 그 수채화를 배경으로 그리운 마음을 담아 너의 씩씩한 모습을 오버랩시켜 본다. 재작년 여름. 유난히도 뜨거웠던 6월의 그날.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뒤 기술병에 기꺼이 지원, 국가의 부름을 받고 306보충대로 향하던 너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웃어 보였지만 나의 눈에 비친 너는 그저 앳되고 안쓰러운 모습 뿐이었어. 우리 가족은 구름처럼 몰려든 입소자 가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입소식을 꼼꼼히 지켜보았고, 퇴소식을 알리는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리자 입소하는 장정들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며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던 너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단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너의 모습이 차츰 희미해지자 결코 아들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너의 어머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뜨겁게 쏟아 내고, 나도 코끝이 찡해 옴을 막을 수가 없더구나. 입영장정에 이어 그 가족·친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뜨거운 한여름의 연병장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네가 사라진 쪽만 주시하고 있었단다.

며칠 후, 네가 보충대에서 우편으로 보낸 옷가지며 신발, 그리고 불편한 자세로 쓴 듯한 짧은 편지를 보며 가족들은 또다시 눈시울을 붉혀야만 했어. 한 동안은 닫힌 너의 방문을 열고 불쑥 네가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고, 나의 등 뒤에서 네가 ‘아버지!’하며 부르는 것만 같은 환청이 며칠 간 이어지기도 하였지. 참으로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아닌 이별은 이토록 떨쳐 내기 힘든 가슴앓이를 강요한다는 것을 새삼 터득하게 되었단다.

우리 가족들은 너를 떠나 보낸 다음, 네가 겪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 보려고 그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냉방기의 사용을 멀리 하였고, 한동안은 식탁도 간소하게 차리는 예의(?)를 갖추기도 하였어. 버스나 지하철에서 군인만 보면 너를 만난 듯한 느낌이 샘솟듯 하였고 네가 보낸 군사우편이 도착하는 날은 우리 집 거실이 제법 활기에 넘쳐 났었단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과 그리움도 흐르는 시간 속으로 차츰 녹아들고 이윽고 첫 휴가, 그리고 둘째 휴가가 이어진 뒤 이제 며칠 뒤 마지막 휴가를 나온다니 왠지 나의 마음이 다시금 설레이기 시작하는구나.

사랑하는 김병장,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사실 이제야 털어놓지만 나는 네가 막상 입대날짜를 받고나자 걱정을 많이 하였단다. 물론 네가 뜻하는 바가 있어 택한 길이지만 검정고시를 통한 대학진학을 하였으므로, 단체생활의 적응력이 다른 입대자들보다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러한 나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음을 너는 서서히 보여 주었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건강한 몸으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 준 데 대해 ‘아버지’를 떠나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나 경제적 수준은 선진국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고 있고, 이에 못지 않게 국방의무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 몰지각한 층에서는 아직도 병역기피를 위한 별의별 웃지 못할 반칙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도 알다시피 군가 가사 중에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라는 대목이 있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하리라고 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병영생활이지만 무사히 마치는 그날까지 항상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길 바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입대 전, 내가 너에게 자주 들려 준 이 말을 다시 되새기며 자랑스런 그날을 차분히 기다려 보자꾸나.

충성!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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