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들이 말하는 고향의 설날
결혼이주여성들이 말하는 고향의 설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2.0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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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한달은 칼(刀)사용 절대금물…중국

엎드리는 절 대신 양팔 겯기 세배…베트남

메콩강 범람 피해 4월중순 설맞이…캄보디아

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남아의 음력문화권 나라들이 공유하던 명절이었다.

지금은 일본이 양력설을 쇠는 등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 몽골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아직도 음력설을 연중 최대의 명절로 여기고 다양한 세시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교실 고급반을 수강하는 중국,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민자와 지원센터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의 말을 빌어 그들 모국의 설 명절 풍습을 알아보았다. 먼저 중국 천진의 탕구이 부두 마을에서 살았다는 리춘지(39·중구 다운동)씨의 고향동네 설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중국의 설>
중국본토 한족들의 최대 명절이자 음력설인 춘절(春節)에는 다양한 세시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지방에 따라 음력 정월 초나흘, 초닷새 혹은 초파일까지 이어지는 춘절은 사실상 섣달 그믐날부터 시작된다. 열흘 넘게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명절음식을 한꺼번에 장만하는 날이 바로 그믐날이기 때문이다.

이 때 칼을 사용하는 모든 음식 준비가 그믐날 10시 이전에 다 이뤄진다.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칼을 쓰는 일은 절대 금기다. 칼은 살기(殺氣)를 뜻하기 때문에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까지도 조심하고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한 달만큼이라도 살기를 멀리하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마늘, 파, 생강이든 뭐든 지지고 볶는 데 들어가는 모든 음식재료를 칼로써 장만하는 일은 밤 10시 이전에 끝내야만 하죠.”
같은 이치에서 장작 같은 땔감도 그믐날 자정 이전에 미리 마련해 두려고 서두른다. 시골 노인들 가운데는 음식이나 땔감 장만에 쓰였던 칼이며 도끼 따위의 쇠붙이는 종이에 싸서 아예 숨겨두기까지 한다.
또 그믐날 자정이 되면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기리는 행사가 시작된다. 커다란 종이돈이나 색종이를 태운다.
이 때 옷감을 상징하는 색종이에는 고인이 생전 즐겨 입던 색깔이 들어가고, 고인이 그 천으로 옷을 지어 입으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시골에서는 세배라도 하는 풍습이 남아있지만 차례(茶禮) 지내는 풍습은 조선족 말고는 따로 없다.

정월 초파일(음력 1월 8일)이 되면 일제히 머리를 깎고 빨래도 한꺼번에 잔뜩 해버리는 풍습이 있다. 새해를 맞아 안 좋은 것은 다 버리고 길(吉)한 것을 맞아들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비슷한 이유로 정월 한 달 동안은 보신탕 같은 육류의 섭취를 일절 금하고 이사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영문 모르게 뺨을 맞아도 참아낸다. 1년의 신수를 음력 정월 한 달이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음식으로 그믐날 저녁에 만드는 만두가 있다. 옛날엔 정구지(부추)가 많이 들어갔지만 요즘은 야채와 달걀이 주로 들어간다. 민간에서 많이 신앙하는 불교 전통의 흔적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설음식으로 돼지 통다리 요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
마을 단위로 잡아서 나누는 돼지 뒷다리는 고기 찜으로 만들어 갈무리해 두었다가 정월 보름까지 즐겨 먹는다.

섣달 그믐날에 만드는 설음식 가운데는 ‘웬쇼’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쌀가루에 팥이나 호두를 속으로 집어넣는데 한국으로 치면 새알심 같은 것이라고 한다. 차이라면 속을 채우고 안 채우고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베트남의 설>
베트남의 설 이야기는 호치민시에서 3시간 거리의 농촌마을 ‘빈롱’ 출신으로 울산시다문화지원센터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는 정태희(23·베트남 이름 쩐티디엠투이)씨가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정월 초하루에 시작해서 일주일 동안 명절 분위기를 즐겼지만 요즘은 그 기간이 사흘로 줄어들었다. 전야 행사로 섣달 그믐날 자정이 되면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불꽃놀이를 즐긴다.

베트남에도 아이들이 하는 세배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꿇어앉아서 하는 세배가 아니라 두 팔을 겯고 한다. 팔을 겯는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고 했다. 세배할 때 하는 축원의 말에는 우리나라처럼 다복(多福)과 건강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하는 식이다.

새해 인사는 주로 친척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한다. 먼 곳에 계셔도 반드시 찾아뵙는 전통을 잃지 않고 있다.
설음식에는 ‘반쯩 반자이’라 부르는 네모지거나 둥근 찹쌀떡이 있다. 찹쌀과 돼지고기, 녹두 같은 음식재료를 바나나 잎으로 싸서 솥에 넣고 네댓 시간 푹 찐 다음 꺼내 먹는다.
정월 대보름에는 불교 전통을 받들어 절에 가는 풍습이 있다. 살생을 멀리한다는 뜻으로 이날만큼은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절에 가면 향불을 피워 소원을 빌죠. 그런데 의미는 잘 모르지만 고향의 어머니(58·드티디엡)는 향을 하나 아니면 셋, 그렇게 홀수로만 태우라고 하시던데요.”
명절놀이 가운데는 자치기, 제기차기, 줄다리기처럼 한국의 명절놀이와 비슷한 놀이들도 행해진다. 별난 놀이 가운데는 지름 2m쯤 되는 원 안에서 진행되는 닭싸움이 있다고 했다.
“정월 초사흘이면 잊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가 새해 인사를 드리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름다운 풍습도 있죠.”

올 설엔 고향집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겠다는 태희 씨는 어릴 적 설 명절 때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친구 집이나 친척 집을 찾아다닌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설>
캄보디아에서 울산으로 시집 온 라이체이 (23·북구 호계동)씨는 또 다른 고향의 설 풍습을 전했다. 라이체이 씨에 따르면, 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 따로 없고 1년 내내 여름뿐인 캄보디아의 설 명절은 흥미롭게도 1월이 아닌 4월 14일부터 사흘 동안이고 설맞이는 14일 정오부터 시작된다.

“10월과 11월, 12월은 메콩강이 넘쳐나는(범람하는) 시기이거든요” 그녀의 설명이 이해를 도왔다. 4월 1일부터 5일 사이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를 찾는다. 이 때는 불교의 나라답게 반드시 스님을 모시고 가야 한다.

아이들의 세배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4월 16일에 부모님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건강하시라는 축원과 함께 선물도 드려진다. “명절놀이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못 보았고 베트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라이체이 씨의 말이었다.
/ 김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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