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번의 정치
삼세번의 정치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2.0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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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기나 놀이를 할 때 불리해지면 떼를 쓰면서 하는 말에 ‘삼세번’ 혹은 ‘삼세판’이 있다. ‘더도 말고 딱 세 번까지만’이란 애원의 정서가 담긴 이용어는 용서를 빌거나 용서를 해줄 때도 적용이 된다. 그만큼 의미가 다양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세인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숫자 가운데 가장 빈도가 높은 숫자를 꼽으라면, 럭키세븐(lucky seven)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칠(七)을, 사주팔자 좋아하는 중국인은 팔(八)을 지목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라면 삼세번의 ‘삼(三)’을 꼽을지 모른다.

사실 우리네 정치 분야에서는 ‘삼선개헌’이란 용어를 필두로 ‘삼(三)’자 사용의 빈도가 비교적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정치의 계절에 접어들면 삼자의 사용 빈도가 지난 1월말로 흔적을 지운 울산지역 ‘사랑의 온도탑’ 높이에 버금갈 수도 있다.

야구용어 삼진(三振)에서 따온 ‘삼진아웃’이라면 상습 음주운전에 대한 철퇴를 의미한다.

하지만 ‘삼세번’ 혹은 ‘삼세판’은 덤으로 주어지는 기회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기대감이 가득 담긴 용어인 셈이다. 그러나 정가에서의 삼세번은 영예의 고지일 수도 있고 한계의 벽, 금지의 신호일 수도 있다.

그 삼세번을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앞둔 울산 정가에 대입시키면 미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선출직의 ‘삼선(三選)’이라면 그 무게감이 세인의 상상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래서 삼선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삼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최병국, 정갑윤 의원에게는 여유와 느긋함을 의미하고 삼선 고지를 겨냥하는 김기현 의원에게는 승리와 행운의 숫자로 받아들여진다.

‘삼선 고지’를 향하고 있는 박맹우 울산광역시장에게도 역시 ‘삼’이란 숫자는 큰 기대감의 숫자다. 하지만 그런 기대의 발목을 잡으려는 분위기가 모닥불처럼 피어오르고 있다는 구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정의 완성을 위해 더도 덜도 말고 딱 세 번만” 하는 ‘삼선 도전’의 희망을 보기 좋게 꺾어 놓겠다고 중도 하마(下馬)를 강요하는 ‘삼선 저지’의 기운이 시장집무실 언저리에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이라고 했다. 정치적 가변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정치의 주춧돌인 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치적 돌발변수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일 수도 있다.

삼선의 영예를 스스로 포기하려는 정치인도 없지는 않다. 정치는 할만큼 했으니 다른 보람 있는 일에 정성을 쏟겠다는 의도에서다. 울산시의회 박부환 부의장이나 송시상 의원도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 우리 주위에는 와신상담의 의지와 ‘삼세번’의 각오로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정치이념 때문에 야당 밥만 먹었다는 한 정치지망생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딱 삼세번만 (도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정치의 꿈을) 접을 생각입니다.”

낙선이 지겨운 나머지 정치이념은 잠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말을 갈아타고 ‘줄서기’를 잘한 덕분에 당선의 영예를 끌어안은 지역 정치인도 있다. 그의 성공사례는 수많은 지망생들의 교본이 돼 삼세번의 도전을 양산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그 열정이 지나쳐 무한도전의 수렁으로 빠지고만 예도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고 없지만, 부산 산복도로마을의 어느 국회의원 지망생은 손수레 연탄배달로 모은 돈을 출마비용으로 몽땅 쏟아 부으며 여덟 번이나 출마했으나 그때마다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삼세번’은 희망의 구름이자 낙담의 뜬구름일 수도 있다. ‘삼세번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는 오아시스이자 바람직한 사회적 기회비용의 가치를 지워버리는 신기루일 수도 있다.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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