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요타 그리고 제너럴모터스(GM)
현대, 도요타 그리고 제너럴모터스(GM)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0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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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기준,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 17%를 기록하고 있는 도요타가 북미에서만 76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할 것이란 보도가 나가자 조지 매글리아라는 한 자동차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 교통 안전당국은 도요타의 페달 결함에 대해 지속적인 경고를 해 온 것으로 안다. 지금 문제는 도요타측이 결함문제를 인식한 시점이다.”

이 간단하지만 함축적인 말 속에 깔린 현실이 지금 도요타를 괴롭히고 있다. 얼핏 보기에 도요타가 미국 구매자들에게 ‘(리콜)자동차를 다시 고쳐 주거나 변상’해주면 끝 날것같은 이 일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도요타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콜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뭐 길래 도요타를 이처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가.

만일 미 교통안전 당국이 “결함이 발견되기 전에 도요타 자동차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판매를 강행했다”고 판정하면 도요타는 미국 구매자로부터 대규모 제소(提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회사 신인도가 떨어져 주가가 폭락하면 도요타는 지난 1980년대 겪었던 부도 위기에 다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도요타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워싱턴 포스트는 묘한 기사 한 줄을 실었다. ‘도요타가 제너럴 모터스(GM)와 1등을 다투는데 문제가 있었다’란 의미심장한 보도를 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이 짤막한 기사에서 이번 사건의 발단은 도요타의 기술적 결함 뿐 만 아니라 미국 기업의 견제 심리도 일부 작용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해 자동차산업 불황으로 GM이 파산 위기에 몰리자 이례적으로 미 정부 에너지국이 GM에 1억 5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했다. 개인 기업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최대의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으로선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만큼 GM이 다급하고 궁지에 몰려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런 위기에 처해 있는 GM이 올해 초 미국 자동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2억4천600만 달러를 투입해 가솔린·전기 자동차 및 순수 전기 자동차 생상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말 오바마 미 대통령도 2015년까지 국내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1백만 대를 생산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도요타는 미국 하이브리드 자동차시장의 64%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43만대를 판매한데 이어 올해 1백만 대를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할 예정이었다. 만일 도요타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2015년 GM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대량 생산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계산이 나온다. 참다못한 GM이 결국 그 간 보류해둔 ‘도요타 발목잡기’에 나섰고 차체결함 숨기기에 급급했던 일본 자동차회사는 그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현대차가 배울 교훈은 두 가지다. 제품에 결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미국 경제정책의 흐름을 저울질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시장을 개척키 위해 한국 차가 할 수 있는 일은 가격 경쟁력인데 그럴 경우 도요타처럼 ‘결함’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결함보다 이에 대응하는 미국인의 자세다. 그들은 생리적으로 ‘속임’을 싫어한다. 실수는 용납하지만 거짓말은 절대 인정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이런 국민들의 속성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한번 발견된 결함은 일단 유보해 뒀다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적절하게 이용하는 미국 정책 운용자들의 또 다른 측면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필요치 않으면 그냥 넘어 가지만 필요할 경우 ‘거짓말’을 최대한 자극제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이제 겨우 5%다. 만일 현대차에서 이번에 이런 결함이 발견됐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소비자 차원의 문제로 접어두고 한국과는 북핵 문제를 숙의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가 17% 점유율을 기록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때는 지금과 사정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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