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정부’ 대국민 호소형
‘섬기는 정부’ 대국민 호소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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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 “해야 합니다” “하겠습니다” 많이 써
역대 취임사 분석 국민 호칭 “사랑”에서 “존경”으로

‘나’ ‘본인’ ‘우리’에서 ‘저’로 낮춰

가장 간략한 취임사 김영삼 대통령

과거정권과 단절 표현 공통점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취임식이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거행됐다.

취임사에 언급된 주요 내용은 ‘국민 섬기기, 선진화, 변화, 경제 살리기’였다.

28분 여에 걸쳐 낭독된 이번 취임사 속에는 올해 세계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밝히고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부분도 들어있었다.

개방, 자율, 창의를 주창하면서 각 국과 F. T. A 협상도 강력히 추진할 것임을 내 비치기도 했다. 또 이에 대한 농어촌의 반발을 의식한 듯 농, 수산업의 2, 3차 산업화도 언급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사용한 어휘는 “해야 합니다”와 “하겠습니다”가 가장 많았는데 국민에게 동창을 호소하는 표현과 의지를 밝히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이번 취임식에는 공군 축하 비행이 취소됐다. 유가 상승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부가 절약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자고 대통령이 주장했다는 후문이 있다.

‘섬기는 정부’이미지를 강조키 위해 취임식 무대의 연단 높이도 대폭 낮췄다. 모양도 ‘T’자 모양으로 구성해 참석자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도 ‘태평고’ 앰블럼으로 바꿨다.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봉황 문양이 너무 권위적”이라고 지적한 데 대한 조치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로운 국가 지도자가 펼칠 ‘정치 철학’ 교과서의 머릿글이다. 통치 이념과 비전을 제시하며 국내외에 약속하는 선언서이기 때문에 이 속에 등장하는 단어 하나, 글 귀, 문장 형태마저 의미를 갖는다.

행사 장소도 중요하다.

그 자리가 신, 구 권력의 이동을 상징하는 곳임에서다. 심지어 취임자의 억양, 제스추어 하나까지도 분석가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취임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조화를 이뤄내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식 행사를 중앙청에서 거행했다. 중앙청은 해방직후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서 였다.

반면에 4대 윤보선 대통령은 태평로 국회의사당에서 민의원, 참의원 양원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선서 수준의 행사만 가졌다. 4.19 후 정부형태가 내각제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상태에 있은 탓이었다.

7대 까지 중앙청 광장에서 행하던 취임행사는 8대에 와서 장충체육관으로 옮겨 실시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장소를 바꾼 이유는 통대의원들에 대한 예우차원 이었거나 국회경시 풍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장충체육관은 당시 통일주체 국민회의 장소였다. 이때부터 ‘체육관 취임식’ 이란 별칭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1, 12대 취임식을 잠실 체육관에서 가졌다. 이 전 대통령들이 초청한 인사는 2,3천 여명에 불과 했던 것에 비해 11대 취임식에는 그 보다 3,4배가 많은 8천 8백 명이 참석했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키 위한 방편으로 장소 변경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행사 장소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택했다.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 이후 국민 직선제에 의해 처음으로 선출된 민주정부란 점을 강조키 위한 방법이었다. 이 날 행사에는 2만5천명이 초청돼 그 간 취임식 참석 인원 중 최고를 기록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국회의사당 취임식 관례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계속되고 있다.

행사장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취임사 속에 나오는 어휘, 문장구조, 반복되는 용어다.

취임 통치자의 국정지표, 의지, 정책방향을 가늠 할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지난 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 사람들의 시대’, 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 창조’란 용어가 취임사에 포함돼 있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시대의 중심국가’등의 캐치프레이즈도 마찬가지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취임사에서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6.25 전쟁 전 까지는 이념 때문에 남북한이 극한적 대립을 벌이는 상황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952년 2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포악하고 악독한 원수’로 북한을 지칭함으로써 전쟁 중이던 남북한의 상태가 최악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통령 자신을 일컫는 일인칭 표현도 통치자의 자세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이승만, 윤보선 대통령은 ‘나’라고 했다.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은 ‘나’와 ‘본인’을 혼용해 사용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본인’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

노태우 대통령이 13대 취임식장에서 처음 ‘저’라는 낮춤말을 사용한 이래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그대로 답습, ‘저’란 일인칭 대명사가 공식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의외로 특이한 경우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저’란 대명사를 취임사에서 단 1회만 사용한 점이다. 윤보선 대통령도 ‘나’를 3회 사용해 비교적 적게 사용한 경우에 해당된다.

대통령들이 국민, 동포 앞에 붙이는 경칭도 각각 다르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랑하는’이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사랑하는’과 ‘친애하는’ 이란 형용사를 병행해 썼다. 반면에 윤보선 대통령은 경칭자체가 없었다. ‘사랑하는, 친애하는’ 이란 어휘가 ‘존경하는’이란 말 보다 군림하는 듯 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친애하는’이란 단어를 썼다.

‘존경하는’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에서다. 16대 노무현 대통령, 17대 이명박 대통령도 동일어를 쓰고 있다.

국민과 통치자를 아울러 칭하는 ‘우리’란 단어도 여러 가지 배경을 가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5대 취임사에서 ‘우리’란 말을 17회 사용했다가 유신말기인 1978년 9대 취임 때는 무려 40회 등장시킨다. 또 전두환 대통령은 12대 취임사에서 ‘우리’란 대명사를 64회나 반복하고 있다.

유신말기 점증되는 민주화 열기, 제 5공화국 출범 당시의 국내 사정을 감안 할 때 ‘전체를 핑계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통치자들의 계산이 엿 보인다. 군 출신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사 곳곳에 군사용어를 남겼다.

‘전진의 대오’, 충성’, ‘후퇴’,’유혈보복’등은 박정희 대통령이 5대 취임식에서 사용했던 말이다.

11대 전두환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도전’ ‘안보의식’ ‘사기양양’ 등이 그 것이다.

13대 노태우 대통령도 ‘응전’ ‘무에서 유’ ‘솔선수범’ 등의 어휘를 등장시키긴 했지만 박, 전 두 대통령의 사용빈도 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문맥, 문장구조도 독특한 경우가 많다.

14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간략하다. 길게 서술된 장문이 아니고 짧게 표현했다. 그리고 대구법을 썼다. “좌절과 침체를 딛고 용기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가 한 예다. 민주화 이후 취임사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문장에 쓰인 용어가 대단히 부드러워 졌다는 점이다. ‘감사’ ‘환경’ ‘복지’등의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취임사를 분석해온 사람이 똑같이 느끼는 바가 있다. 취임사 내용이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 시도에 골몰한다는 점, 표현이 감상적이고 수사가 많아 국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등이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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