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기]화산분출과 땅꺼짐이 빚은 거대한 둥지
[풍토기]화산분출과 땅꺼짐이 빚은 거대한 둥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1.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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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콜드론
개요

대운산 산체는 큰 솥 안에 고구마가 놓여있는 모습이다.

이 일대는 오래전 화산 분화구가 꺼진 뒤 그 가운데 심성암이 솟구치는 콜드론(콜드론은 솥이란 뜻이 있음)이란 지질 사건을 겪은 뒤 생겨난 지형이다.

대운산 전체는 5개의 큰 봉우리가 애워쌌다. 대운산 1,2,3봉과 시명산과 불광산을 거느린 둥근 형태다.

그 가운데 해발 300m 안팎의 낮은 산이 솟아있다.

높은 봉우리를 형성하는 산체는 화산암이고, 가운데 봉긋한 산들은 땅속에서 굳은 뒤 삐죽이 올라온 심성암이다.

이 두개의 다른 지질이 만나는 경계에는 깊고 험준한 절벽이 전개돼 있다. 최고봉인 3봉 아래 7부 능선과 척판암 뒤의 절벽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은 예로부터 신성하게 여겨졌고 설화가 생겨났다.

험준한 곳과 달리 대운산 1봉 아래 해발 200m 고지에 산성터가 있고 그 아래 황토밭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노출된 고분지역이 있다.

거친 화산활동 흔적없고

부채꼴 등산로 발달

답사기

지질학자들이 대운산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는 오래전 매우 강력한 화산활동이 있었다. 먼저 용암이 분출하면서 큰 분화구가 생겼다. 뒤이어 용암이 빠져나온 텅빈 지하공간에 분화구 외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뒤 마그마가 엷어진 지각을 비집고 올라오면서 굳었다. 이런 지형을 화산함몰체 또는 콜드론이라 부른다. 콜드론은 큰 솥이란 뜻이다.

분화구가 둥글기 때문에 함몰된 형태도 둥근 모습을 띤다.

오늘날 등산하기에 좋은 것도 둥근 함몰체 덕분이다. 한 지점에서 능선에 올라 부채꼴 모양으로 이동한 뒤 아래로 내려오면 출발점에 되돌아 올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원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나 있는 등산 루트는 줄잡아 13개다.

이 등산길 가운데 도통골을 거쳐 제1봉에 오르면 7부 능선에 거대한 절벽이 있다. 무너져 내린 분화구의 외곽 경계가 남아있는 흔적으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옛적 수도자가 거주한 듯 기와 조각이 보이고 석축을 쌓은 흔적이 있다. 앞쪽이 틔여 바다가 보인다. 척판암이 있는 절벽지대도 같은 흔적일 것이다.

제1봉으로 가는 대운산 동쪽 해발 270m 지점에는 운화리 성터가 있다. 석축을 쌓아 길이 1㎞ 가량 작은 산봉우리를 감싼 형태다. 1봉의 험준한 산세를 방벽으로 삼고, 멀리 회야강 하구를 조망할수 있는 지점이다. 신라때 포구를 따라 들어온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임시 농성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산성 아래는 황토가 깊이 쌓여있고 수백개의 석곽묘가 산재해 있다. 1995년께 철탑을 세우려고 임시도로를 만들면서 고분을 파괴했다. 길 바닥에는 수많은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길가에는 고분이 반쯤 파헤쳐진 특이한 모습이 보인다. 도굴흔적도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분유적이 훼손된 모습으로는 가장 적나라 할 것이다. 유적훼손의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다.

대운산 물이 흘러드는 회야강의 하구에 펼쳐진 진하해수욕장 백사장은 대운산 덕택이라 할수 있다. 대운산 가운데 있는 고구마 처럼 생긴 심성암이 풍화된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는데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인근의 나사해수욕장은 바로 뒤편에 있는 화강암에서, 한때 풍부했던 이진과 목도 백사장도 해안에 있는 화강암에서 공급되었다.

진하백사장 배후에는 화강암이 없기 때문에 10㎞쯤 떨어진 대운산에서 회야강을 따라 흘러내려온 것이다.

지진 예고한 원효대사 신통력

척판암 설화의 한 해석

플러스α

척판암은 높이 30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 아래에 있는 암자다. 이 암자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장안사 부속 시설이다.

척판암에는 원효대사의 신통력을 나타내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그 설화는 이곳에서 일어난 지질사건을 대입할 때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 이곳에서 암자를 짓고 수도하던 원효대사는 암자 뒤쪽의 기암괴석에 핀 철쭉꽃을 구경하다가 문득 중국땅 장안성에 있는 운제사라는 절 안의 대웅전에 천여명의 승려가 예불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대웅전 대들보가 무너지려는 것을 알고 그 위급한 사태를 알리고자 옆에 놓여있던 작은 밥상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衆)이란 글자를 적어서 던졌다. 운제사 대웅전 앞에 날아간 소반이 공중에 맴도는 것을 보려고 승려들이 앞뜰로 나오자 굉음과 함께 대웅전이 무너졌다. 깜짝 놀란 승려들은 땅에 떨어진 소반에 “해동의 원효가 소반을 던져 무리를 구제하노라”는 여덟자를 보고 원효가 고승인 것을 알고 길을 떠나 양산군 천성산 석굴에 있는 원효대사를 만나러 와 모두가 성인이 됐다고 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원효의 수도처를 연구한 경북대 문경현교수는 “이 설화는 황당무계하고 원효의 위대한 교화를 과시하기 위한 조작”이라며 “다만 원효가 불광산과 천성산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다시 이 설화가 얘기하는 사건의 핵심을 정리하면 집이 무너지려는 사고를 예방해 승려를 구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이곳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된 오래된 사건이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척판암의 본찰인 장안사는 서기 673년 문무왕 1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창건때 사찰이름은 쌍계사였다. 골짜기가 두가닥 나 있으므로 쌍계란 이름은 지형에서 유래됐을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훨씬 지나 신라의 애장왕(800~809년 재위)이 친히 이 산골짜기에 왔다. 애장왕은 어떤 이유로 여기까지 왔을까. 당시의 사회를 뒤흔든 큰 사건이 있었거나 매우 긴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으로 볼수 있다. 애장왕이 다녀간 뒤 원효대사가 창건한 쌍계사는 장안사로 바뀌었다. 사적기는 다녀간 뒤 이름만 바뀌었다고 돼 있으나 사찰의 위치도 바뀌고 새 건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애장왕은 임금이 된지 9년만에 삼촌에게 궁중에서 피살될 만큼 왕권이 불안했다. 그러면서 개혁을 추구했다. 애장왕은 사찰을 새로 짓지 말고 다만 수리만 하도록 왕명을 내린 기록이 전한다. 귀족들이 사찰을 통해 재산은 은닉하고 세력을 키우는데 대한 통제로 해석되는 이 교지는 불교국가인 신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었으므로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따라서 애장왕은 쌍계사를 수리한뒤 이름을 장안사로 바꾸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수리하고 이름을 바꾸기 위해 이 골짜기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장왕이 재위기간 중인 802년 7월, 803년 10월, 805년 11월에 큰 지진이 있었던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장안사 주변은 현대에 와서 지질학적으로 구명된 일광 단층선이 지나는 곳이다.

또 이곳은 대운산함몰체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단애를 이루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지각이 조금 흔들려도 거대한 바위가 무너질듯 위태롭다. 비탈면이 급하며 많은 바위들이 깨져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이런 연관성을 검토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쌍계사는 130여년뒤 지진으로 폐사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인명피해가 났을수도 있다. 그로인해 애장왕이 직접 방문해 위로한뒤 새로 조영한 사찰에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도 생각할수 있다. 설화는 그 뒤 생겨났을 것이다. 척판암 그 자체는 장안사가 조영된 뒤 설화가 만들어지면서 새로 지어진 암자일수도 있다.

현재 척판암이 있는 곳은 재해위험지역에 속한다. 암자 머리 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의 아래쪽이 깎여나가고 있고 흔들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다. 원효스님이 오늘날 계신다면 암자를 옮기도록 주문할 것으로 여겨진다.

심성암 주변 둘러싼 직경15km 환상암맥

학자의 견해

대운산 화산함몰체의 화산-심성암류에 대한 암석학적 연구(부산대 지구과학과 윤성효 교수 등 지질학회지 제36권 제 3호 2002년9월 투고)대운산 콜드론은 한 가운데 심성암이 있고 외곽에 화산암과 환상암맥이 둘러싸인 동심원 모양으로 배열되는 직경 15㎞의 화산함몰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대운산을 중심으로 남창과 서창 주위의 지질과 지형을 이해할 여러가지 단서를 준다. 일광 및 동래 단층과 절리의 위치가 지니는 의미도 읽을 수 있다.

화산암류는 본래 있었던 퇴적암을 뚫고 올라와 있다. 등산객이 주로 밟고 지나는 대운산 1,2,3 봉을 잇는 능선이 화산재가 엉켜 굳어진 응회암임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는 직경 3㎞×4㎞인 타원상의 화강암이 고구마 모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운산 계곡물을 맑게 보이게 하는 담황색 암반들이 화강암이다. 형성된 연대도 6천만년 전후로 백악기 말쯤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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