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깎인 넓은 해저암반은 해양동식물 보고
파도에 깎인 넓은 해저암반은 해양동식물 보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1.04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저에 펼쳐진 평평한 대지 14
▲ 정자항 북방파제 옆에 전개돼 있는 파식대. 일명 기차바위라고 불리는 이곳은 간조때면 운동장 크기의 평평한 암반이 드러난다.

개요

강동어항 북쪽 방파제 앞 바다는 수심이 일정하다. 그 깊이는 어른 어깨 깊이를 넘지 않는다. 100m를 나아가도 수심이 거의 일정하다. 바닥은 암반이다.

조금만 들어가도 급속히 깊어지는 울산의 어느 바다와도 다르다.

해안이 파도에 깎여 생겨난 파식대 특징을 보여준다.

바다 밑 바위는 오래전 화산재가 바위를 끌어안고 굳어진 각력응회암이다.

파식대가 끝나는 지점에는 깊이가 5m로 급격히 깊어진다. 파도가 밀려오면 이 지점에서 깨진다. 파도는 해안에서 깨지지만 이곳은 200~300m 밖에서 부숴져 밀려온다. 멀리서 깨져 밀려오는 파도가 장관이다.

넓은 파식대에는 풍부한 해초와 어패류들이 자란다. 해초가 바위에서 쉽게 떨어지는 봄에는 해안에 수많은 풍락초들이 밀려온다.

바닷물이 발목 위를 적시지 못한다

▲ 당사항 남쪽 끝 용동굴에 있는 풍화혈. 해수면에 닿았던 부분이 풍화돼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답사기

강동항 북방파제에 서면 멀리서 부숴져 밀려오는 파도가 장쾌하다. 파도는 해안선이나 바위에 부딪쳐야 깨진다. 이곳은 왜 먼 바다에서부터 깨져 들어올까.

그 궁금증은 해도를 보고 풀렸다. 해도에는 1.5m 등고선이 바다 안쪽까지 이어졌다. 마치 서해안 갯벌지대 같다. 그러다가 400m 바깥은 5m로 급격히 깊어졌다. 바다속에 작은 절벽이 길게 이어진 것이다. 파도는 물속 절벽에 부딪쳐 생긴 것이다.

이듬해 여름 파도가 잔잔한 날 수경을 끼고 바다속에 들어갔다. 가장자리부터 수심이 가슴팍에 찼다. 그런데 한 참을 걸어가도 수심이 같았다. 해도의 수심대로 낮은 평탄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같은 해저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 북방파제 옆 ‘기차바위’다. 간조때는 바지를 걷고 바다 안쪽으로 50m 가량 걸어갈 수 있다. 바닥이 평평하고 수심이 일정하다. 기차길처럼 반듯하다고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이 바위는 운동장 반 크기다.

이곳의 바위는 화산재가 주변의 모난 돌들을 끌어안고 굳어진 각력응회암이다. 단단한 어떤 각력들은 파도에 마모되지 않고 건재해 있다. 바다에 솟아있는 바위들이 그런 각력이다. 해저면에는 작은 각력들이 무수히 깔려 고둥이며 해초들의 보금자리가 돼 있다.

파식대는 강동항 남방파제 아래 판지마을과 당사마을까지 뻗어있다. 복성마을 이름은 발목에 볼록 튀어나온 복상뼈에서 유래했다는데 바다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도 수심이 복상뼈까지 잠기지 않을 정도라는 지형에서 유래됐을 것이다.

여름에 수경을 끼고 이곳을 떠다니는 것은 즐겁다. 수많은 해초들과 어패류를 구경하는 즐거움은 비할 데 없다. 어떨땐 고둥이나 해삼을 따려는 행위로 오인받기도 했다.

기차바위와 해저 넙적바위에는 녹조류 5종, 갈조류 3종, 홍조류 27종 외 현화식물 1종으로 총 36종의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사가 급한 동해안이나 뻘밭이 밋밋한 남해안에 비해 매우 풍부한 해초장(海草場)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여름철에는 수영과 스노클링을 통해, 겨울철에는 배를 타고 물안경을 통해 관찰하는 체험관광지로 안성마춤이다.

기차바위와 넙적바위는 얕은 수심이 주는 안전성, 해저동식물의 다양성, 해저암반의 특이성, 용이한 접근성 때문에 최적의 체험장이 될수있다.

물속에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계절에는 어부들이 해삼이나 멍게를 채올리기 위해 사용한 물안경을 활용할 수 있다. 70년대까지 사용된 이 물안경은 사다리꼴 판자 4개를 짜고 넓은 쪽 끝에 유리를 대고 틈 사이에 물이 스미지 않게 송진이나 페인트를 두껍게 발랐다. 이 물안경은 옛날에는 함지박으로 햇빛을 가리고 물밑을 살폈다고 해서 ‘작박’이라고도 부른다. 마치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기위해 어른거리는 물결위에 유리판을 얹고 수면 밑을 보는 이치와 같다.

봄철이면 매우 많은 풍락초가 축대 아래 쌓이는데 주민들이 갈구리로 끌어 올린다. 여기서 건져 말린 도박과 진두발은 젤리를 만들거나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 최근에는 황토방이 유행하면서 황토의 응고제로 쓰이기도 한다.

플러스α

어사 박문수·박정희 대통령도 쩔쩔맨 미역바위

울산 박씨 소유로 돼있는 곽암은 역사가 깊고 사연도 많다. 소유권 다툼때 박정희 대통령도 손을 든 미역바위다. 그보다 앞서 어사 박문수도 해결하지 못했다.

곽암의 곽(藿)은 미역, 암(岩)은 바위란 뜻이다. 미역바위는 고려태조가 울산의 호족인 박윤웅에게 하사한뒤 지금까지 그 후손의 소유다. 모든 공유수면은 국가소유라는 법이 제정된 뒤에도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 박씨 소유라고 친히 서명함으로써 초법적 소유물이 됐다. 해양에 있는 재산 가운데 이만큼 오래 한 가문의 소유가 된 것은 없을 것이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는 왕명으로 곽암 12구역을 회수했다가 그 가운데 1구를 문중에 되돌려줬다.

이 유명한 미역바위는 강동어항 옆 판지마을 앞 해상에 있다.

바위면에 윤웅(允雄) 2자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고 1945년 세운 비와 최근에 세운 비 두개가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나는 미역은 빠른 물쌀에 견딘 탓인지 쫄깃한 맛을 낸다. 이 일대에는 파도가 세기 때문에 미역을 양식하기 힘들다.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 이태원씨는 제2권 235쪽에서 `경남 양산군(지금은 부산시) 기장면 앞바다에 나는 기장미역이 가장 좋은 미역으로 손꼽히는데, 보통 내만의 입구인 조류가 빠른 곳에서 자란 것이 품질이 좋다고 한다. 사리의 거센 파도 때문에 사리미역이 유명하다는 말도 허언만은 아닌것 같다고 썼다.

참으로 곽암의 미역을 모르는 말이다. 조류가 빠르고 파도가 거센 곳이라면 도대체 한류와 난류가 마주치는 이곳만큼 더 심한 곳이 동남해안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강동은 작가 이태원씨 외가다. 종종 외가에 놀러왔다는 그가 강동의 곽암미역을 몰랐다니 유감이다.

2002년 허용석 PD가 제작한 KBS특집 다큐멘터리 `’해조류 1,2편’은 이태원씨와는 퍽 다른 실상을 전달하고 있다. 2편 중간에 5분가량 할애한 곽암미역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울산 강동항 옆 우가마을과 판지마을 바다는 해류가 빠르고 파도가 심해 미역양식이 안된다. 자연산 미역만 생산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판매할때 특별 대접을 받는다. 양식미역값의 15배를 받는다. 판지마을에는 비석이 있는데 예로 부터 이곳이 미역과 관련해 유명한 곳임을 알려준다. 이곳은 흥려 박씨 문중 소유로 돼있고 매년 소출때는 10단씩 제삿상에 올린다. 기장군 미역은 1967년도 첫 미역양식이 성공한 곳이다.”

즉 기장은 미역양식이 처음 성공한 곳이고, 자연산 미역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은 울산 강동동 판지.우가 마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현산어보 작가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음 개정판에는 위의 내용을 넣어달라고.

판지마을 일출횟집 아래 일명 ‘단추암’ 일대 6000㎡는 공유수면인데 풍화된 암반이 다채롭고 이 틈새에 자라는 해변식물이 풍부하다.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각력응회암 속에 든 바위가 빠져나가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은 풍화혈이란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학자의 견해

지각융기 보여주는 다채로운 경관

당사해안의 지형경관 보고서(반용부 신라대 지리정보학과 남정화) 1998년 울산에 애정이 많은 반 교수가 울산 주전에서 경북 감포읍 까지 해안의 지형경관을 비롯하여 그 보전 상태 등을 조사한 보고서다.

그 가운데 판지해안에 대해 끝애 동방섬 새뜸섬 등 암석으로 이뤄진 해식애 시스택 파식대가 발달한 암석해안으로 5~10m 높이의 해성단구에 어촌이 있다고 기술했다.

해변의 모래밭·벼랑 등에는 내염성(耐鹽性)·내건성(耐乾性)이 강한 식물이 여러 종류 자라고 있어 주변을 가꾸면 그 자체로 공원이 될수 있다고 보았다.

이 일대 지형에 대해서는 인접한 다른 지방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밝혔다.

지질적으로는 제3기층이 덮혀있고 강동면 일대는 화성암이, 그리고 동구 주전동 일대는 퇴적암인 경상계 하양층군이 분포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또 해안선에 접하고 있는 도로 가까이에서 해성력층의 노두가 발견되고 해성단구면이 전 해안에 걸쳐 10m와 40m 높이를 비롯한 3단으로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적었다. 이것은 이 해안 지대가 지각변동에 따라서 융기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모든 국민이 이 해안 지형경관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그 속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은 물론 해외의 많은 사람들도 이곳을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보전하여야 한다는 권고를 놓치지 않았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