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 돕는 보람… 너무 행복해요”
“고향친구 돕는 보람… 너무 행복해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09.12.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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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 강나라(몽골)·정태희(베트남)씨
남구 옥동 가족문화센터 안에 둥지를 튼 울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는 늘 분주하지만 표정 밝은 여성들이 산다. 하는 일은 산더미 같아도 정규직원은 고작 9명. 이들 가운데 2명은 놀랍게도 결혼이주여성들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가 고향인 이주 5년차의 강나라씨(29·북구 상안동)와 베트남 호치민시가 고향인 이주 3년차의 정태희씨(23·범서읍 구영리)가 바로 그녀들. 나라 씨는 이씨 성의 회사원을, 태희 씨는 정씨 성의 개인택시기사를 남편으로 맞이했다. 제각기 ‘오자마자 낳았다’는 다섯 살짜리와 세 살짜리 공주님을 모시고 오붓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린이집에 맡기곤 했던 나라 씨의 딸아이는 몽골에서 다니러 온 50대 후반의 친정어머니가, 만 24개월 된 태희 씨의 딸아이는 한국의 시어머니가 돌보아 주신다 “성이 이씨인 시아버지께서 처음에 ‘이 나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고향 이름 잊지 않게 ‘강 나라’로 하면 어떻겠는지 여쭈었더니 고맙게도 허락해 주셨어요” 이목구비 또렷한 나라 씨가 작명 비화를 슬쩍 귀띔한다. 그녀의 결혼 전 몽골 이름은 ‘강바트’.

“지난번 음력설 전 겨울철인 12월에 남편하고 딸, 이렇게 세 식구가 고향을 찾았는데 그곳의 겨울이 한국의 가을 날씨 같은데도 얼마나 춥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농사지으며 마을이장 하신다는 눈망울 예쁜 태희 씨도 뒤질세라 한 마디 거든다. 호치민시에도 4계절이 있다는 이야기는 몽골 출신 나라 씨 입에서 나왔다.

고향 이야기는 명절 풍습 소개로 이어졌다. 베트남에서도 몽골에서도 음력설 쐬기는 한국과 똑 같단다. 한국이 사흘 연휴라면 베트남은 열흘 연휴인 점이 다르다. 베트남은 추석명절 시기도 한국과 같지만 몽골만은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지는 ‘나담 축제’가 추석에 해당한다. 그동안 언니뻘인 나라 씨는 두 번, 태희 씨는 딱 한 번 고향을 다녀왔다.

지난해 한국어교실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지난 3월 지원센터의 정식 직원이 된 두 이주여성은 성취의욕 면에서 여간내기가 아니다. 우선, 그녀들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한국외국어대의 한국어능력시험 과정을 거뜬히 통과했음을 의미한다.

지난 6월과 7월에는 울산대 사회교육원에서 다문화강사 양성 과정을 나란히 수료했고, 실습기간을 거쳐 지난 11월에는 강사자격증인 수료증까지 거머쥐었다. 석 달마다 거치는 보수(심화)교육에는 통역·번역 기법 수업도 들어간다.“죄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위엣 분들의 배려와 동료직원들의 격려 덕분이죠” 그녀들의 겸양지덕은 전통 한국 며느리들의 미덕을 쏙 빼 닮았다.

고국에서는 고학력 수준인 그녀들은 학업에 대한 열의가 식을 줄을 모른다. 몽골과학기술대학교를 나온 나라 씨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한다. 고졸인 태희 씨는 ‘나이도 젊고 해서’ 열심히 배워 학사모를 써 보는 게 꿈이다. 하지만 둘 다 시간 쪼개기가 예삿일이 아니지 싶다. 결혼이주가 폭주하는 베트남여성 담당 태희 씨는 더더욱 그렇다.

“MC 같은 사회자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수줍어하면서도 활짝 웃는 모습에 정감이 묻어난다. 능숙한 통역과 번역 실력이 주된 무기인 두 이주여성들이 도맡아 하는 일은 무척 다양한 편. 상담과 교육지원, 전화통역에서 국적취득 지원, 이혼문제를 비롯한 법률상담, 가사 해결에 이르기까지 가짓수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보람의 연속. 미소 띤 얼굴, 해맑은 표정도 그런 심적 여유와 만족감에서 우러나오는 게 분명하지 싶었다.

“우리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말을 잘 모르는 채 무작정 결혼해서 이주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 때문에 부부간이나 고부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전화로 상담해 오는 일도 많고요.”

태희 씨가 눈물겨운 상담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한국말을 몰라 의사소통이 막힌 베트남 여성 A씨는 경상도 시어머니의 큰소리가 꾸짖는 소리로만 들려 두려웠고, 남편이나 시어머니는 말문을 닫은 A씨가 답답하게만 보여 속이 상했다. 서로 풀리지 않는 오해는 가정불화로까지 번졌다. 마침내 통역상담 신청이 들어왔고 태희 씨는 유창한 두 나라 말로 양쪽의 심사를 헤아려 벼랑 끝에 서 있던 한 가정을 다시 화목으로 이끌 수 있었다.

“사정을 알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시던 그분 시어머니는 ‘나도 잘하고 싶지’ 하셨고 남편은 ‘나도 더 열심히 노력할게’ 그러셨어요. 오해가 눈 녹듯이 풀리고 나니까 나중엔 서로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시던데요.”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어 보이는 나라 씨도 뒤질세라 성공상담 사례의 보따리를 풀고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녀에겐 전화상담이 많은 편이고 외지에서 들어오는 통역상담 요청도 더러 있다고 했다.

“경남 함양에서 들어온 통역상담이었죠.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몽골 이주여성과 시아버지 사이에 말이 안 통하니까 오해가 생겼었나 봐요. 두 나라 말로 의사를 소통시켜 오해를 풀어드렸지만…”

“다른 하나는 몽골 여성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어느 한국 남성의 상담이었죠. 몽골에까지 갔다 오셨다는 그분은 결혼중개업자가 못 미덥다면서 저한테 통역상담을 바라셔서 두 분 사이를 전화로 오가며 해결해 드렸죠.”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은 몽골 여성과 베트남 여성. 이들은 음식도 한국 것에 푹 빠질 정도로 한국여성으로서의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 베트남 여인 정태희 씨는 갈비와 생선회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선생님 글씨, 의사 글씨 같아 보이네요” 인터뷰 내용을 속기 식으로 적어 쉽사리 알아볼 수 없게 된 기자의 글씨를 보고 건넨 20대 초반 태희 씨의 익살이었다.

/ 김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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