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땅, 효문공단
버림받은 땅, 효문공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2.16 2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라가 하는 일이 뭐고. 백성들이 지 땅도 마음대로 못쓰게 하는 일이가. 또 울산시는 뭐 하고 있노. 이재오를 찾아 가든지 해야지. 내 참 더러버서. 이 달 말 법원 판결 보고 국민권익위라 카든가 뭐라카는 그 쪽으로 찾아 갈 끼다” 16일 오전, 효문 산업단지 안쪽에서 밭일을 하던 한 촌부는 산업단지 얘기를 꺼내자 어딘가를 향해 욕설부터 퍼 붓기 시작했다.

울산 북구 효문 공단은 도무지 산업단지랄 수가 없다. 공장지역과 주거 공간 그리고 경작지가 뒤 섞여 지난 1960년대 초 남구 석유화학단지가 처음 들어섰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주택지 바로 옆에 자동차 부품 업체가 분진을 내 뿜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군데군데 볏짚으로 머리를 동여 맨 배추들이 널 부러져 있다. 자동차 시트 공장에서 내다 버린 폐자재가 조그만 동산을 이루고 있는 현장을 지나면 개를 사육하는 곳에서 나오는 악취가 한 겨울에도 진동한다. 주택지가 있지만 이들을 연결하는 간선도로가 확보돼 있지 않고 주차 공간과 진입도로가 좁아 주민불편은 극에 달해 있다. 그냥 재주껏 피하고 비켜가며 오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기형(畸形)은 이 일대가 지난 1975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이 일대 부동산 소유주들은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못했다. 개발권자인 당시 토지공사가 지주로부터 토지를 일괄 매입해 단지를 조성한 후 입주 업체들에게 분양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 지역 토지 소유주들은 부동산을 매매 할 수도 없고 건물이나 주택 등을 신·개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만일 산업단지로 지정된 뒤 국가가 개발을 미루면 그 지역 토지 소유자들은 사업이 시작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효문공단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산업단지 내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데다 개발 차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어지자 개발공사는 산업단지로 지정만 한 뒤 지금껏 사업을 차일피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산업단지로 지정된 지 34년이 지났지만 이 지역 토지소유자들 특히 거주민들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주변 산업체에서 나오는 각종 오·폐수와 오염 물질 속에 묻혀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은 이런 악조건을 수차례 지자체, 정부 해당부처에 진정하고 지역 정치권도 국정감사나 예산 심의과정을 통해 문제 해결을 여러번 촉구했지만 토지주택개발공사는 그 때마다 ‘검토하겠다’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나라당 울주군 강길부 의원이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자 정부 관계부서측은 그 때만 잠시 짓시늉을 했을 뿐 그 이 후론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 2003년 울산시와 당시 토지 개발공사는 ‘효문지구 개발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울산시 측의 설득으로 다시 2004년에 ‘효문공단 개발사업 시행 협약’을 맺었다. 토지공사로부터 일종의 서면 약속을 받아 낸 셈이다. 그러나 서류에 서명한지 5년이 지나도록 토지주택공사는 여태껏 개발 사업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지주들과 주민들이 울산지법에 산업단지 해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는 상태다.

토지주택공사가 아직도 사업에 착수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해 봤자 남는 이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토지주택공사가 하는 일이 뭔가. 사업특성에 맞는 대단위 단지를 조성해 적정가에 분양함으로써 주거시설 용지(用地)나 공장부지에 투기 바람이 불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임무 중 하나다. 그런 공공기관이 돈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국민의 귀중한 재산을 34년이나 묶어두고 있다니 정말 한심스런 일이다.

지난 10월 말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울산에 와 지난 4년간 해결치 못한 지역 현안을 단 하루 만에 해결하고 돌아 간적이 있다. 그 때 부울 토지주택공사 사장이 울산 현장에 달려와 문제 해결에 동의했던 기억이 난다. 효문공단 문제를 또 다시 그 쪽에 맡겨야 해결된다면 그리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일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