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독일 황제에 보낸 밀서 발견
고종이 독일 황제에 보낸 밀서 발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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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독립권 위협 등 을사늑약 절박함 담겨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1906년 5월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로 주장하기 위해 수교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 중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서는 이보다 1년1개월 늦은 1907년 6월에 전달됐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연구하던 중 이 밀서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1906년 1월에 쓴 것으로 적혀 있는 이 밀서는 당시 고종 황제의 자문관이던 프랑스인 트레믈러를 통해 1906년 5월 독일 외교부에 전달됐으며, 독일 정부는 밀서에 찍힌 고종의 어새(御璽)를 감정해 진짜임을 확인했다.

고종은 1905년 11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자 이듬해 1월 을사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국서를 작성해 영국 신문 ‘런던 트리뷴’의 기자를 통해 서구 열강에 보냈다. 이런 사실은 1년 가량 후 런던 트리뷴지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나 국서가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된 밀서는 이 국서와 더불어 개별 국가 원수들에게 별도로 보낸 친서로 추정되고 있다.

‘대덕국(大德國.독일) 대황제 폐하’로 시작하는 이 밀서는 강대국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 당하고 독립을 위협받은 상황을 전하고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을사늑약 이후 고종의 절박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이 밀서는 빌헬름 2세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서에 첨부된 당시 독일 정부의 문서에는 ‘황제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자체 처리결과가 기록돼 있었으며 실제로 빌헬름 2세가 밀서를 확인했다는 서명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밀서가 전달되기 한달 전인 1906년 4월 독일을 제외한 서구 열강 등이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면서 독일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이 일로 외교부 차관이 사임하는 등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을사조약 무효를 위해 고종이 수교국 원수를 향해 보낸 최초의 친서”라며 “당시 고종의 주권 수호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독일 외에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당시 수교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에도 함께 친서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 교수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1994-1995년 독일 외교부 문서보관소에 방문 연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한국 관련 문서를 많이 발견해 고종황제 밀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후 지난 2002년 국사편찬위원회 위탁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외교문서 사본을 입수했고 작년 학술진흥재단의 기초연구 과제에 선정돼 정밀하게 연구하던 중 최근 발견했다”고 경위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당시 독일 외교부에서 밀서가 처리된 경위 등을 추가로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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