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눈이 즐거운 안식의 길
형형색색 눈이 즐거운 안식의 길
  • 김규신 기자
  • 승인 2009.11.26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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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 문화마당 등 지역단체들 ‘시리덤 삼거리’ 지명 회복 나서
▲ 대동골에서 본 코끼리산의 모습, 여섯개의 치맛폭이 대동골을 감싸고 있다.

 

옛길이 숲이 됐다. 숲이 길이 됐다.

시리덤 길은 울주군 범서읍 천상과 청량면 율리를 이어주던 산길이다.

마을과 마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옛길이다.

이 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낙엽이 떨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색깔로 피곤해진 눈이 안식을 찾는 길이다. 길을 가면서 만나는 꼭대기에는 시원한 바람과 확 트인 전망으로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옛 천상의 본동 자리인 벽산아파트를 출발해 시리덤삼거리, 시리덤(코끼리산), 대동골삼거리, 불송골절터, 불송골저수지, 댓골입구로 이어지며 대동골삼거리에서는 율리로 뻗어나간 옛길이 연결돼 있다.

범서읍 천상리 벽산아파트 옆에는 문수산 산행길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천상 정수장길이 이어지고 조금 더 발을 내디뎌 보면 조그마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코끼리산 아래 시리덤삼거리다.

시리덤(시루덤이라고도 불림)이라 함은 건너편 구영리 또는 산 아래에서 봤을 때 그 모습이 떡시루와 같은 모양이라 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명칭이다.

코끼리산이라는 명칭 역시 그 형태가 코끼리와 흡사해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이 산은 또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여인의 치마폭과 같은 모습이다.

산을 앞에 두고 주먹을 들어 자신을 향하게 하면 손가락 골 사이로 파인 모습이 마치 여섯 폭의 치마와 같은 형태다. 이 치맛자락은 산 아래 대동마을로 향하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대동마을에는 예부터 동네 안 혼사가 많았다고 한다.

시리덤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문수산 산행길이 연결되고 가파른 왼쪽 길을 선택하면 천상 대동마을과 청량면 율리로 향할 수 있는 옛길이 전개된다.

▲ 시리덤 고개를 넘어 대동골로 내려오는 길, 좁은 길 옆에 낙엽이 지천에 깔려있다.

산행 길과 달리 옛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 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아 시리덤삼거리를 일반인들이 찾기란 쉽지가 않다. 다만 앞으로 범서문화마당 등 지역 단체들이 옛길 찾기의 일환으로 표지판 설치를 계획하고 있어 시리덤 이란 명칭이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시리덤 꼭대기를 지나 수십여 미터 더 가다보면 보일 듯 안 보일 듯 숲 아래로 향한 길과 마주한다. 이 길이 대동골과 연결된 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또 다른 옛길이 기다리고 있다. 청량면 율리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다. 천상마을 사람들과 대동골 사람들이 마주치는 삼거리다. 이곳을 통해 범서 사람들은 율리로 넘나들었다. 볼일도 보고 시집, 장가 행렬도 모두 이곳을 통했다.

대동골로 이어진 나선형 길을 따라 내려오면 절터가 보인다.

절터에는 돌무더기가 산재해 있다. 그냥 보면 돌무더기지만 예사 터가 아니다.

김헌태 이장은 “넓은 평지에 돌담 흔적이 있다. 아래로 조금 더 가면 불당골못이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불당골이라는 명칭이 이 곳 절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당골을 지나면 갑자기 길이 넓어진다. 차량 한 대쯤은 거뜬히 지나갈 만한 길이다.

소달구지가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이 범서읍 천상리 신도시로 이어진다.

 

“사라진 범서옛길 너무 많아

모두 찾아 소통의 길 만들 터”

▲ 범서읍 주민자치위 문화분과위원장 김헌태(대리마을 이장)
범서읍 주민자치위 문화분과위원장 김헌태(대리마을 이장)

“지금은 숲 속 오솔길이 됐지만 예전에는 평범한 길이었습니다”

범서읍 대리 마을 이장 김헌태(52·사진)씨는 시리덤 옛길이 일반적인 산행로와는 다름을 강조했다.

그는 “이 길이 지금은 울창한 숲이지만 해방을 전후로 나무가 거의 없던 길이었다. 그래서 고무신에 반바지 입고 다녀도 긁히고 다칠 일이 없었다. 일제 침략 당시 일본이 본국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곡식을 수송하려고 길을 내면서 나무들을 많이 훼손한 데다 6.25 이후 공비 토벌과 땔감 이용을 위해 너도나도 베면서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던 것이다”고 했다.

그는 또 “지금은 산중에 있는 길의 특성상 봄이면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울창한 나무들의 그늘이 하나의 자연휴양림을 조성해 그 속에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든다. 게다가 가을과 겨울이면 아름다운 단풍들로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어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제공해 왔다”며 “범서 사람들이 율리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했던 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대리 이장과 범서읍 주민자치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 이장은 현재 범서문화마당과 공동으로 ‘범서의 옛길 찾기’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17회차가 됐다.

회차마다 20여명이 참여했음을 보면 중복 탐방단을 제외하더라도 족히 200명은 길찾기에 동행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김 이장은 지역 토박이로써 신도시인 구영, 천상지구에 이주해 오는 사람들과 소통의 장을 열어 보고자 매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을 되밟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미난 일도 많았다. 특히 반용지역 은굴의 경우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것을 탐방 과정에서 발견하면서 주목 받기도 했다.

그가 발견한 은굴은 1910년도 일제시대 당시 은을 캐던 광산 중 하나였던 것이다.

김 이장은 “옛길은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범서지역 토박이는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대신 새로 유입된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길 탐방을 통해 서로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며 “범서에는 아직도 잊혀진 옛길이 너무도 많다. 앞으로도 계속 옛길을 찾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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