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성장 뒤안길에 ‘최 일벌레’ 있었다
울산성장 뒤안길에 ‘최 일벌레’ 있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1.2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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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지역·삼성 리모티브 2차전지공장 유치 지경부 방문·설득 끝에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 태화강 생태하천 조성 생태복원 작업 진두지휘
31년 공직생활 마감하는 최병권 울산시 경제통상실장

지난 78년 7급 공채로 경남 의령군 내무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울산광역시 최병권 경제통상실장이 울산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 울산 동구청 사회산업 과장으로 전보되면서부터다. 81년 의령에서 김해로 전근된 뒤 91년 경남도청 도시국 주택과에 근무하다 사무관으로 승진해 92년 경남 고성 부 읍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2년 만에 울산으로 왔다. 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될 당시 서기관으로 승진해 기업지원과장, 2004년 부 이사관이 되면서 문화체육국장, 자치행정국장을 역임했다. 2008년 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경제통상실장을 맡았다. 최 실장은 오는 11월 30일 공식적인 업무를 마감하고 12월 4일 이임식을 갖는다. 편집자주

최병권 실장은 골프를 못 친다. 이유를 묻자 “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이력을 보면 애당초 골프와 거리가 먼 사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최실장의 별명은 ‘준비 총괄반장’이다. 김해읍이 시로 승격되던 81년도에 준비요원으로 차출된 이래 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될 때도 당시 심완구 시장의 지시에 따라 준비 총괄반장을 맡았다.

-김해읍 근무 당시 왜 하필이면 최 실장을 시 승격 준비 반장으로 뽑았을까요.

(장난 끼 있게 웃으면서) 일 좀 잘한다고요. 대신 약 1년 동안 준비하면서 반 쯤 죽었습니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자정에 가까워서 집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 했죠. 아예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했고요. 가정에는 빵점 아버지, 남편이었습니다.

-그럴 때 집에 계시는 분이 아무 말씀도 안 했습니까.

이 질문에 인터뷰 첫 머리부터 활기 있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최 실장이 잠시 말을 멈추며 약간 침울해졌다.

“사실 고인(故人)에겐 지금도 미안 합니다. 한 마디 불평도 없었습니다. 시 승격 준비작업을 하느라 밤늦게 까지 근무하고 있으면 읍사무소 앞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곤 했죠. 일을 마치고 애들과 웃으며 집으로 가던 생각이 납니다. 극장에 데리고 가 영화 한편 제대로 못 보여주고 떠나보냈습니다”

최병권 실장은 김해에서 공직을 시작한지 6년째 되던 1986년 암으로 투병하던 부인과 사별했다. 그는 공직 생활 31년 중 그 때가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기였다고 술회한다. 현 부인과는 87년 재혼했다. 사별한 전 부인은 고향인 경주에 안장돼 있다.

“지금 집 사람과 결혼하면서 서로 약속했습니다. 자식은 갖지 말자고 말입니다. 이미 아이들이 있는데 또 자식을 낳아 갈등을 빚는 가정들을 본적이 있거든요. 처녀 몸으로 결혼하면서도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 집 사람의 착한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일부에서 집 사람을 두고 ‘부적절한 관계’ 운운할 땐 몹시 서운합니다. 애들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일만 죽으라고 하느라’ 골프 못 쳤다는 최병권 실장에게 공무원을 시작한 동기가 뭐였느냐고 묻자 또 사별한 전 부인 얘기가 나왔다. “ 공무원이 되기 전에 기업체에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집 사람이 이왕 월급쟁이 하려면 공무원을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늦은 나이(28세)에 공직을 시작했습니다”

-경제통상실장으로 있으면서 했던 일 중 가장 보람되게 느끼는 부분은.

삼성SDI 부지에 삼성 리모티브 2차 전지공장을 건설토록 유치한 일입니다. 5천억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앞으로 4천5백억원을 더 투자할 예정이랍디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울주군 상북, 삼남, 언양 일대에 엄청난 경제 활성화가 있을 겁니다. 많은 지역민들이 고용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일이 성사되고 난 뒤 삼성SDI 사장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울산광역시 공무원의 열정에 감동해 공장건설을 울산 쪽으로 결정했다더군요. 그 공장유치를 위해 경기도 및 수원시가 우리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거든요.

-자유무역지역 지정에도 실무를 담당했다는데요.

일이란 게 원래 그렇잖습니까. 대강적인 윤곽이 잡히면 구체적인 실무로 접근하게 되는데 그게 윤곽잡기보다 수십 배는 더 힘들어요. 자유무역지역 지정도 마찬가집니다. 사업유치는 지역정치권과 울산시가 했지만 구체적 조율은 통상경제실에서 했습니다. 국비 70% 지원을 확보키 위해 지식경제부에 수십 차례 들락거렸습니다.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돼 현재 공정율이 35%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국비지원을 받아 사업이 완료되면 울산시와 온산지역 주민들의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겁니다.

-대우차 이전 문제는 어떻습니까.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북면으로 이전해 오는 것은 대우버스입니다. 대우차가 아닙니다. 내년 말까지 이전이 완료됩니다.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도 있습니다만 확실히 옮겨 옵니다. 대우차 측과 여러 번 만나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최 일벌레‘는 동북아 오일허브 유치를 위해 실무전선에서 뛴 것을 경제통상실장 재임 기간 중 최대의 업적으로 꼽았다. 또 이 사업은 반드시 국비지원을 받아야 민자유치가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 와서 최 실장은 일부 숨겨진 이야기도 털어 놨다.

-동북아 오일허브를 울산에 구축키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우선 이 사업은 울산을 향 후 수십 년 간 ‘먹여 살릴 수 있는 대역사(大役事’)임을 알아야 합니다. 온양, 온산 지역발전과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요. 당초 이 사업은 지난 정권 때 여수로 확정돼 있던 일이예요. 지역 정치권이 앞 장 서고 우리가 실무차원에서 모든 일을 추진했습니다. 지정 확정을 미적거리는 KDI와 지식경제부에 논리적 설득으로 접근했습니다. 직접 방문해 울산의 장점을 수차례 설명했습니다. 여수의 약점을 간파해 역공을 펼치기도 했죠. 그 쪽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항구 이용에 시간적 제약을 받지만 울산신항은 24시간 ‘풀’가동 할 수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최병권 실장이 2004년 문화체육국장으로 있을 때 태화강 생태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마침 박맹우 시장이 구상하던 태화강 살리기 사업과 그 시기가 맞물려 떨어져 최 일선에서 생태복원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생태복원 사업에 대한 구상을 갖게 된 동기는.

제1회 태화강 수영대회를 개최하면서 부텁니다. 강물이 오염돼 엉망이었거든요. 태화강 수질이 좋지 않아 환경단체, 언론, 의회까지 수영대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월 대회를 앞두고 3월부터 강 수질 개선에 나섰습니다. 그 것이 시장님의 태화강 생태복원 작업‘ 하이라이트’로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태화강 관리단이 설치된 것도 그때부텁니다. 울산에 ‘생태도시’란 이름이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고요. 지금 그 강이 4대강 살리기의 시범사업으로 선정돼 있잖습니까.

최 실장이 남긴 추진 사업들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법적인 대응까지 불사하면서 밀어붙인 태화루 복원 사업, 태화강을 생태하천으로 한 단계 상승시킨 ‘용선(龍船) 대회’ 박물관 불모지란 오명을 벗기 위해 시도한 시립 박물관 착공, 대곡박물관 및 암각화 박물관 개관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태생해 움직이고 있다. / 글 = 정종식 기자

/ 사진 = 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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