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마음의 감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1.2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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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오랜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쓸쓸히 빈집을 지키는 기러기 아빠, 애지중지 기른 딸을 출가시키고 허전함에 밤잠을 설치는 아버지, 이혼 혹은 사별의 아픔을 겪고 낯선 홀로서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물론, 평범한 일상 속에 묻혀 지내는 대다수 사람들도 까닭없는 ‘외로움’이란 세 글자를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외로움’을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 교수 해리 라이스는 ‘대개 심한 외로움은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느낀다’고 말한다.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이란 얘기다.

성별을 불문하고 성인의 사회적 고립감은 수면 장애, 고혈압, 우울증과 자살의 위험 증가 등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지며, 현재 얼마나 외로우냐가 그날 밤의 숙면 여부 만이 아니라 1 년 뒤의 우울증까지 예측해 준다고 한다. 또한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높이고 면역체계를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외로울수록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밝힌 바 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자살을 놓고 찬반 양론이 벌어지는 대목이 나온다.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산간 마을을 찾았다가 로테라는 여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 그리고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 그 둘은 격론을 벌인다. 결국 로테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실연 당한 베르테르는 정신적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살한다.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철에 더 자주 발생하므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나이, 인종, 지위,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방치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에 이르면 우울증이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마음의 상처 때문으로 생각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세로토닌이나 노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한 데서 오는 부조화에 있다고 한다.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개인적으로 나약해서가 아니라 호르몬계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으로 결국 마음과 뇌가 연결고리를 갖고 작용하면서 생겨나는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요즘은 일조량이 떨어지면서 ‘계절성 우울증’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고 하니 이 독감 바이러스(?)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요령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담담한 마음으로 이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겠다.

필자도 한때는 ‘양극성 우울증’인 ‘조울증’에 몹시 시달렸었지만 스스로 마음을 열어 젖히고 늦깎이 등단한 뒤 글쓰기 작업에 몰두하면서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외롭다는 느낌은, 어쩌면 자신이 일방적으로 단정 짓는 착오일 수도 있다. 어차피 ‘홀로 와서 홀로 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 아닌가.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을 향해 힘껏 소리쳐 보자.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라고.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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