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사
미국 박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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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초부터 불기 시작한 영어 바람은 앞으로도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지난 10일 발표된 ‘이명박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 7명 중 6명이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기 때문이다. 또 15일에 나온 차기 정부 장관 내정자 약력을 보면 14명 중 절반이 미국 석·박사 출신이다. 상황이 이럴 진 대 교육열 많은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고 해외 유학·어학연수 붐은 날로 더해질 것이 뻔하다.

특히 차기 정부가 경제, 한·미 유대 강화를 정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미국 석·박사에 대한 동경 심리는 한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박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1906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은 후 1910년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국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이 대통령을 지도 했던 교수가 미국 32대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1925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조병옥 박사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다.

당시 미국에 유학 와 있던 한국 학생들 모임인 ‘주미 조선인 유학생회’에 어느 날 조 박사가 참석케 됐다. 평소 조병옥에 대한 얘기를 익히 듣고 있던 여학생들은 ‘부잣집 귀공자’ 쯤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막상 나타난 그의 모습이 불독같이 험상궂게 생긴 것을 보고 여학생들이 기겁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 최초 여성 미국박사는 이화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다.

1922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레안 대학교에 유학해 1936년 콜럼비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한국의 부흥을 위한 농어촌 교육’ 이였다.

특정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지식을 상징하는 ‘박사’도 곤경에 처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제3공화국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모 수석비서관에게 경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경제학 박사인 담당 비서관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 이였다. 그런데 이 비서관이 3개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 모든 것은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자 대통령이 서류를 내 던졌다는 비화도 있다. 학자의 조심성이 군 출신 대통령에겐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소설화 된 재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죽음은 아직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한국 과학자 중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이 박사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대통령의 핵 개발 강행과 미국의 저지공작이 첨예화 된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이 박사 사건은 미 CIA 개입설 이 끊이지 않았었다.

어려움을 극복해 인간 승리를 구가한 미국 박사가 강영우 박사다.

시각 장애인이란 역경을 넘어 한국인으로선 미국 최고위직 공무원이 됐다. 백악관 국가 장애 위원회 정책 차관보로 있는 강 박사는 세계 장애인의 표상이 돼있다. 예상 했던 것과 다른 경우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루이사’란 애칭으로 불렸던 임영신 전 중앙대 총장은 1932년 남가주대에서 신학석사를 받았다.

자유당 정권 몰락을 가져온 3.15 부정선거의 중심인물 이기붕씨 부인 박마리아는 피바디 대 석사 출신이다.

울산에도 미국박사는 많다. 울산대 교수 중 85명이 미국 박사 학위소지자다.

정정길 총장이 미시건대 정치학 박사고, 조재호 경제학과 교수는 존스 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조선해양 공학부 신현경 교수는 MIT박사다.

전 울산대 교육대학원 박문태 교수는 뉴욕 주립 대에 박사논물을 제출하면서 논문 뒤편에 ‘한글 요약’을 하겠다고 주장해 대학당국을 곤혹케 했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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