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설화 최초 해외소개 스토리텔링 교두보 마련
한국설화 최초 해외소개 스토리텔링 교두보 마련
  • 이상문 기자
  • 승인 2009.11.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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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언양출신 영문학자 故 정인섭 박사
▲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정인섭 박사 생전모습.
울산제일일보는 창간 2주년을 맞아 울산 출신의 영문학자이며 스토리텔링의 효시격인 정인섭 선생을 재조명하고 한국 스토리텔링의 현황과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울산의 문화콘텐츠 개발 가능성을 진단하는 특집을 마련한다. 21세기 감성의 시대를 이끌 신소재 문화사업인 스토리텔링이 울산의 이야기 자원과 결합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는 무한하다. 본 특집을 계기로 울산의 무궁한 이야기 자원이 새로운 옷을 입고 울산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서양에 천일야화가 있다면 한국에는 온돌야화가 있다. ‘온돌야화’는 1927년에 일본에서 처음 간행됐다. 영문학자 정인섭이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펴낸 책이다. 정인섭은 그래서 근대 한국 스토리텔링의 원조라 불린다. 그는 한국의 설화 99편을 집대성해 1952년 영국에서 ‘한국의 설화(Folk Tales from Korea)’를 펴내 서양에 맨 먼저 알리기도 했다.

그는 울산 사람이다. 그래선지 ‘한국의 설화’에 소개된 99편의 설화 가운데 29 편이 울산에서 채록한 얘기다. 특히 우리 설화의 백미로 손꼽는 ‘해와 달’은 그의 친척 오하수에게 언양 고향집의 온돌방에서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채록한 설화에는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은데 이는 영남알프스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배경으로 하는 고향 마을의 자연배경과 무관치 않다.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영문학자였던 눈솔 정인섭 박사(1905~1983)는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에서 태어나 어음리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곳에서 언양보통학교(언양초등)를 다녔다. 대구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1929년에 졸업했으며 귀국해서는 1946년까지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었다.

1922년 마해송, 윤극영, 방정환 등과 함께 ‘색동회’의 발기인이 돼 동인지 ‘어린이’에 동시와 동극, 동화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를 ‘어린아이’라 부르다가 존칭어미인 ‘이’를 사용해 어린이를 인격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연희전문에 재직하면서 한글학회, 극예술연구회, 한국민속학회, 한국음성학회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이 때 같은 울산 출신이었던 외솔 최현배 선생과 함흥의 감옥에서 함께 지낸 기연도 있다.

정인섭의 장남 정해룡(삼공사 회장)씨는 “연희전문에 재직할 당시 저녁이 되면 집 안마당에는 항상 이웃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모여 선친의 이야기 구연을 들었다”며 “당시 선친의 우리 설화에 대한 집착이 그런 방법으로 표출됐으며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한국 구비문학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정인섭의 이 같은 이야기에 대한 열정으로 1927년 한국의 전래동화, 전설 등을 담은 ‘온돌야화’를 일문으로 발간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전통 설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길을 텄다. 해방 후 1946년부터 중앙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0년에 런던대학교 교환교수로 초빙돼 영국으로 떠났다. 런던대학교에 머물면서 1952년 한국의 설화와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한국의 설화(Folk Tales from Korea)’를 발간해 한국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에 소개했다.

‘온돌야화’와 ‘한국의 설화’는 ‘한국의 아라비안나이트’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아르네와 톰슨의 설화색인표에 한국자료로는 유일하게 등재돼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한국의 설화’를 한국어로 다시 역편한 최인학 전 인하대학교 교수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정보사회의 태양은 지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꿈의 사회가 온다”는 발언을 예로 들면서 “정인섭의 온돌야화와 한국의 설화는 최근 문화적 신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포함한 문화콘텐츠 전쟁을 선점하기 위한 하나의 교두보가 된다”고 평가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오출세 교수는 “한국의 구비문학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학문적 체계가 마련됐다”며 “반세기 전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설화를 채집하고 집대성한 그의 공적은 한국문학사에 크게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인섭은 영국에서 귀국한 후 1956년 1년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이듬해 중앙대학교로 이직해 1968년까지 문과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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