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이 쌓인 바위는 강처럼 흐르고
첩첩이 쌓인 바위는 강처럼 흐르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1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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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동면 보은골 완만한 비탈에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 이 일대에 이같은 형태를 지닌 돌강은 4곳이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너비 60m에 길이 800m에 이른다.

 [개요]

생선비늘처럼 겹쳐 800m나 늘어서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 비탈에 잘생긴 화강암 덩어리 수만개가 줄지어 있다. 완만한 비탈에 생선비늘처럼 가지런히 겹쳐있다. 큰 곳은 너비 60미터에 길이가 무려 800미터에 이른다.

돌이 강처럼 흘러내렸다고 돌강 또는 암괴류라 부른다. 돌강은 정족산 남쪽 운흥사쪽에 2곳, 정족산 북쪽 보은골쪽에 4곳이 두드러진다. 무심한 바위들이 보여주는 것은 질서와 통일성이다.

각 바위들은 모두 모서리가 깎여 부드럽다. 그리고 각각의 바위는 두꺼운 부분이 산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바위는 모두 은색 화강암이다. 다른 종류의 암석이 끼어있지 않다. 바위들은 3만년전쯤 한반도가 시베리아처럼 추울때 서릿발에 의해 이동됐다가 정지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화석지형이라고 한다.

바위 더미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사철 들린다. 그러나 깊고 어두운 바위 틈 사이에 물은 보이지 않는다.

원효와 의상 같은 선사들이 이 지형에 깊이 심취한 흔적이 있다.

[답사기]

서릿발에 들려 포복행진한 바위
그 아래서 울려오는 세찬 물소리, 그러나 물은 보이지 않는다


“야, 물소리다.”

못미더워하는 일행을 다독여 찾아간 골짜기에서 탄성이 터졌다.

골짜기 이름은 보물이 숨겨진 골짜기란 뜻의 ‘보은곡’(寶隱谷). 정말 보물이 있었다. 보물은 바위와 바위 틈에 흐르는 물이다.

장롱 크기만한 바위들이 포개져 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던 일행들이 바위 틈에서 울려나오는 ‘쏴~’하는 물소리에 더욱 놀라워 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바위틈에 고개를 디밀고 찾아보지만 깊고 어두운 돌 틈 사이에 물길은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가 이렇게 크다면 어딘가 물이 흐르는 것이 보여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신기한 것이다. 2009년 여름 보은골 돌강을 찾았을 때는 인적이 드물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근에 ‘보삼마을’이란 독특한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는데 30년전 이 마을에서 토속풍습 영화 ‘씨받이’를 촬영할 만큼 외진 곳이다.

그래도 이 돌에 눈독을 들였던 이들은 많았던 모양이다. 이곳에 있는 오래된 목장터를 지키고 있는 한 노인에 따르면 30년전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임란충신을 모시는 충열사를 조성할 때 이곳에서 바위를 가져갔단다. 이 기슭에 9천㎡ 규모의 목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만 바위를 빼내 하루에 서너 트럭씩 1년간 실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돌을 실어낸 흔적이 없다. 그만큼 돌이 어마어마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란다.

울산시는 이곳에 2008년까지 공원묘지 겸 종합장사시설을 갖출 예정이었으나 뒤늦게 지형가치를 알고 설계를 변경했다. 2005년 말 울산문화재연구원이 기본설계에 앞서 지표조사를 했지만 이 지형이 지닌 자연사적 가치를 확인하지 않은 실책을 범했다. 그 때문에 설계를 뒤늦게 바꿔야 했다.

산 아래 주민 역시 “돌더미가 홍수때는 물을 머금고 가뭄때는 물을 뿜는 역할을 하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암괴류를 이루는 바위는 심층풍화로 만들어졌고, 길게 늘어선 것은 서리에 의해 포복행진한 결과다.

정족산 모암은 7천만년전쯤 땅속에서 굳어진 흑운모 화강암으로 밝혀져 있다. 이 바위들은 온난다습한 기후에서 땅속 깊은 곳에서 풍화된 뒤 오랜 세월이 흘러 지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그뒤 1년에 수㎝씩 미끄러져 내렸다.이 바위가 미끄럼을 타게한 것은 서릿발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많은 서릿발이 돌을 들어올리고 녹으면서 바위를 이동시킨 것이다. 오늘날의 기후로는 이같은 현상을 일으킬수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시베리아 기후쯤 될 때 일어났다. 최종빙하기였던 3만년전 이곳의 날씨는 툰트라기후에 가까워 서릿발 작용이 활발했다.

[학자의 견해]

주빙하기에 형성 무제치늪도 영향

전영권(경북대학교 지리학과)·손명원(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는 ‘대구 비슬산지 내 지형자원의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10권 제1호, 2004년)에서 비슬산 돌강의 현황과 관광·학습탐방로의 활용안을 검토했다.

비슬산 돌강은 2003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됐다. 이 논문은 비슬산 고도 450m에서 1천m 사이 2개의 돌강이 길이 2㎞ 가량 펼쳐져 있으며 세계에서 드문 지형이라고 소개했다.

이 논문은 지구가 지금부터 수백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 빙하기(1년중 가장 따뜻한 달의 평균기온이 영하여서 물이 항상 얼음상태로 존재한 시기)였으며, 특히 마지막 빙하기인 8만년전에서 1만년전 사이 기간의 우리나라는 빙하기보다 조금 높은 섭씨 0도를 오르내린 주빙하기후(빙하기후 주변에 나타나는 기후)였다며 비슬산 돌강이 이 시기에 형성됐음을 밝혔다.

푸석바위(석비레)와 돌알(핵석)로 구성된 풍화층은 얼었다 풀렸다하는 과정에 연간 수㎝씩 아래도 이동한뒤 빗물에 의해 푸석바위를 이뤘던 진흙이 씻겨나가 큰 돌만 남아있는 현상임을 밝혔다. 아울러 이 지형이 지닌 여러 특성을 감안한 관광·학습탐방로 개발을 논의했다.

손명원교수(대구대학교 지리교육학과)는 ‘무제치 제2늪의 형성과정’(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10권 제1호, 2004년)에서 정족산 무제치늪의 형성과정을 밝히면서 돌강 이론을 접목했다.

이 늪을 발견한 학자들은 빗물의 차별침식으로 파여진 V자형 골짜기라고 봤으나 실제로는 온난습윤한 기후환경에서 절리를 따라 풍화된 암석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우묵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정족산 동쪽 사면의 습지 주변만 관찰하고 습지 너머 북쪽과 남쪽 사면에 광대하게 펼쳐진 돌강의 존재는 언급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플러스 알파]

돌강이 있는 곳은 예로부터 신성한 곳
보은골에는 영혼을 달래는 하늘공원 조성

돌강을 신성하게 여긴 사람이 골짜기 부분에 돌탑을 쌓았다.

 

돌강이 있는 곳에는 유명한 고찰이 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 경북 비슬산 유가사, 삼랑진 만어산 만어사, 고성군 연화산 옥천사가 그 예다.

돌강에 기념비적인 건축을 하는 것은 경관이 빼어나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 사찰에는 물과 관련된 신성한 창건설화가 있다. 범어사에는 금빛 우물(금정) 속에 하늘에서 내려온 금어가 산다는 신화가 있고, 만어사는 수만마리의 물고기 얘기가 있으며, 옥천사는 효험이 좋은 물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여기에 덧붙일 사찰이 울산 운흥사터다. 이 절터는 정족산 남쪽면에 있다. 이 절이 자리잡은 핵심 배경 역시 돌강이라 할 수 있다. 왜냐면 이 절 좌우에는 어김없이 돌강이 길게 전개돼 있기 때문이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번성했을 때는 대웅전과 장경각 등이 건물과 59개의 암자를 거느렸다고 기록돼 있다. 꽤 많은 승려가 거주했고 사철 마르지 않은 용수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이 절에서는 닥나무를 이용해 절에서 불경을 기록하는 한지를 만든 곳으로 전해진다. 닥나무를 물에 씻고 불리는 데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만한 물을 댈만한 곳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때 소실됐다가 광해군 6년 대의선사가 재건했으나 200년뒤 없어졌다고 한다. 동학난과 관련있다고 한다.

범어사도 돌강을 이용한 절이다. 범어사는 돌강을 평탄시키고 그 위에 절을 지었다. 아예 물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 그래서 항해하는 배(行舟形)의 형국이란 평가를 낳았다.

범어사는 서기 678년 문무왕 18년에 건립됐다. 범어사 사적기에 따르면 지관(地官)은 의상스님이었고 공사 총감독은 문무왕이다. 혜초(惠超)화상이 돌계단을 책임졌고 사찰전답에 관한 문서는 김생(金生)이 기록했다고 적혀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이 총 동원된 거국적인 건축이었음을 가르켜 준다.

원효의 운흥사와 의상의 범어사가 대비된다. 돌강이란 지형을 이용한 것은 같은데 하나는 폐사되고 하나는 아직도 번성한다.

운흥사터는 정족산 남쪽면 돌강 사이에 있다. 이제 정족산 북쪽면 돌강에는 울산시립 종합장례식장인 ‘하늘공원’이 세워진다. 영혼의 안식을 위한 신성한 장소가 된다. 돌강 위에 세워지는 몇 안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고 신라 이후 1천년이 지나 21세기에 건축된다는 특수성도 갖는다.

울산시는 이 지형의 특이성을 알게 된 뒤 장례식장의 면모 뿐 아니라 주변 경관 관리에 새로운 시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기념비적인 조영물이 될수도 있다는 예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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