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의 우리말 사랑
관공서의 우리말 사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0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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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인사들은 인터넷 중독자들이다. 내키지 않더라도 하루에 몇 건에서 열 몇 건이 넘는 전송 메일 또는 통신사나 포털사이트의 뉴스거리들을 눈여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생계형 중독자들인 셈이다.

메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보도 자료들일 수 있다. 관공서의 보도 자료는 거의 매일같이 날아든다. 주5일 근무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울산지역에선 토요일 신문이 나오지 않는데도 금요일자 보도 자료가 어김없이 들어온다. 울산시와 각 구·군과 울산시교육청이 이에 해당한다. 울산시의회도 횟수가 많지만 다른 관공서보다는 덜한 편이다. 간간이 기업체의 홍보용 보도 자료도 날아든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가 그 주를 이룬다. 상공인단체에서도 알릴 일이 있을 때면 보도 자료를 보낸다.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내보내는 관공서나 기업체 중에서 글 솜씨가 가장 매끄러운 것은 놀랍게도 기업체 쪽이다. 현대중공업이 으뜸이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예술관이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은 글자 한 자 안 고치고도 기자 난에 이름만 바꿔 넣어도 될 만큼 빈틈이 적다. 그러다 보니 신문마다 기사의 표현이 거의 비슷해지는 촌극이 자주 빚어지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관공서를 대표하는 울산시는 어떠할까? 적지 않은 이들이 ‘아니올시다.’라고 답할지 모를 일이다. 눈에 거슬리는 예를 들자면 끝도 한도 없을 수 있기에 지면에서의 인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보도 자료를 작성하는 공보담당관실 관계자들의 노고와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보도 자료 작성의 밑거름이 되는 담당 부서의 보도 자료 초안부터가 원초적인 문제를 안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주로 쓰는 용어나 어휘가 한자 투이거나 사뭇 권위주의적이다. 더러는 ‘고수부지’와 같은 일본식 용어가 예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상급자의 생각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든지 아니면 상급자가 우리말에 무지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는 곳이 우리네 공직사회이기에 그런 지적도 가능해진다. 순수한 우리말을 쓰면 격이 떨어진다는 그릇된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지금의 자치행정부 소속 총무처가 우리말의 순화를 당부하는 공문서를 전국의 관공서에 내려 보낸 일이 1980년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공문서에는 그때까지도 농어촌 지역에서 흔히 남아있던 ‘부락(部洛)이란 낱말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부락’이란 원래 일본에서 천민들이 집단을 이루어 거주하던 지역으로 일본에서도 그런 용어는 이미 사라졌다는 설명을 곁들이고 있었다. ‘고수부지’ 역시 왜색 짙은 낱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 논란과 시비의 와중에서도 다행히 우리 울산 시민들은 위대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는 행운을 공유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위세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563돌이 되는 올해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을 병영의 복원된 외솔 선생 생가에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외솔 생가에 딸린 기념관에는 엄청난 양의 외솔의 체취와 흔적들이 기증의 과정을 거쳐 소장, 전시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뜻 있는 이들은 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고인의 체취와 흔적을 기려 기념식이나 번듯하게 지내자는 것도 아니다. 또 고인을 팔아 짭짤한 수입이나 올리고 이른바 ‘도시 브랜드’나 높이자는 것도 아니다. 고인의 뜻을 정년 받드는 길은 당신께서 일제강점기에 모진 옥고를 무릅쓰면서까지 지킨 우리 한글과 한글 사랑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리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시각에서 관공서의 상급자들께서는 이번 한글날과 외솔 생가의 복원을 진정한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더불어, 보도 자료를 내보내는 관공서의 관계자들도 지금까지의 타성에서 감연히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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