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도 매혹시킨 기적같은 경관
신라왕도 매혹시킨 기적같은 경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0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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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건반같은 12절리
▲ 화강암이 쪼개진 틈새로 파도가 들락거리며 파놓은 거대한 파식동. 세로 100m 가로40m에 이르는 이곳은 대왕암공원에서 최고의 경관을 보여준다.

 

대왕암 공원 북쪽에는 12개의 파식동이 놓여있다. 길고 나란한 모습이 마치 피아노 건반 같다.

반듯하고 까마득한 절벽이 이어져 있다. 파도가 깊은 동혈에 부딪혀 울리는 음향은 대양의 화음과 같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경관일 것이다. 이 경관을 만든 것은 수직 수평으로 쪼개지는 화강암의 특성과 파도의 힘이다. 반대편 남쪽 해안은 부드러운 반달형이다. 북쪽이 역동적 직선미라면 남쪽은 온화한 곡선미가 대칭을 이룬다. 반달해안에는 호박같은 둥근 돌이 무수히 펼쳐져 있다.

그리고 높이 10미터 규모의 소나무가 가지런히 뻗어있고 100년을 넘은 등대와 세월을 같이하고 있다.

해안선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프랙탈 현상을 실물로 볼수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형상과 음향에서 감정이 긴장됐다가 풀어졌다를 반복하는 음악적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아득한 절벽과 반달형 해안의 절묘한 대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울기반도에 들렀을 때 대왕암에 걸쳐놓은 철제교량을 보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의 질녀 이숙자 교수에게 들었다. 이유는 다리를 이음으로써 상상력을 끊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2007년 한해 울산의 행정부시장을 역임한 하동원씨는 울기반도에 오면 사무치는 그 무엇이 있어 해국이 무성한 가을에 자주 찾았다고 술회한 적 있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하동군이었는데, 울기반도 경관이 너무 자랑스러워 김종민 전 문화체육부장관이 울산을 방문했을 때 울산공항에서 다짜고짜 이곳으로 모셨다.

 

 

▲ 대왕암공원의 항공사진. 왼쪽이 반달형 해안이고 전면은 요철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 부시장이 자랑스러워 한 경관은 대왕암이 아니고, 대왕암에서 한참 떨어진 동북쪽 해안의 파식동이었다.

일산반도의 전체 경관은 크게 등대, 송림, 파식동, 반달형 해안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압권은 파식동이다.

파식동은 해안절벽이 파도에 깨져 구멍이 난 지형이다. 파식동은 하나하나의 모양도 경이롭다. 그런 것이 12개나 줄지어 있으니 기적같은 경관이다.

파식동은 이 반도 북동 해안절벽의 화강암이 직사각형으로 깨지고 빠져나가 생겼다. 12개가 나란히 벌어져 있다. 크기는 가로 40m이고 세로 100m인 것도 있다.

거대한 구멍들을 멀리서 보면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킨다. 마치 해신이 두드리는 12개의 건반이라고 할까.

첫 번째 파식동 위에는 돌을 모아 쌓은 탑 2개가 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고 전율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다. 두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 각각 길이가 다른 파식동은 리듬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규모도 장대하지만 좌우균형이 빼어나다. 너비 10m 간격을 두고 좌우에 조각도로 새긴 것처럼 반듯하다. 이 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경관이랄 수 있다. 건너편 어풍대에서 바라볼 수 있다.

마지막 12번째 파식동 이름은 ‘대왕암 용굴’. 그러나 앞서 열거한 것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곳의 경관을 따라가면 끊길 듯 이어지다가 강하고 간결하게 맺는 흐름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2번 3악장 끝 부분을 연상시킨다.

한편 이 반도의 남서쪽은 부드러운 몽돌해안이다. 해안선 모양도 반달꼴이다. 북동쪽에 역동적인 파식동이 전개된 것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보인다.

파도에 닳아 둥글어진 돌들은 크기가 주먹에서 호박만 하다. 검은 운모가 많은 화강암이다. 흰 거품을 문 파도가 밀려가면 방금 면도한 얼굴처럼 매끄러운 모습을 보인다.

반대편의 가파른 분위기에 비해 이쪽은 한가롭다. 돌 틈사이에 갯강구들이 산책하고 총알고둥이 바위를 핥고 있다. 수많은 공기주머니를 매단 모자반은 물결 높이따라 오르내리며 햇빛을 받아드린다.

바다에는 인근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어진 거선들이 걸음마하듯 느리게 시험운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반도를 덮은 송림은 세찬 해풍에 단련돼 날씬하다. 대부분 10미터를 넘고 수관이 적고 통직하다. 빼곡하고 고요한 송림속에 하얀 등대가 서있다. 바다 안개가 덮으면 신비를 더한다.

무심한 바위도 부분과 전체가 닮는다

일산반도 일대에서는 현대과학이 연구하는 자연현상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자연형태는 부분과 전체가 닮는다는 이른바 ‘자연의 자기 유사성’이란 현상이 전개돼 있다.

12개로 쪼개진 절리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을 자세히 보면 그 작은 한 부분도 여러 가닥으로 쪼개진 절리가 보인다. 들쑥날쑥한 모습이 비슷하다. 해수욕장이 있는 일산진과 현대중공업이 자리잡은 2개의 포구와 방어진항까지를 한 눈에 보면 그 역시 요철형태를 보인다. 현대중공업이 주변지역을 매립하기 전의 모습을 보면 더욱 뚜렷하다.

크거나 작거나 중간이거나 각각 다른 규모에서 들쑥날쑥한 유사성이 확인된다.

자기유사성은 수학자 만델브로트가 창안한 ‘프랙탈( fractal)이론’의 대표적 개념이다.

이 이론은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주창한다. 나무의 한 부분을 보면 나무전체와 비슷하다. 고사리나무 잎의 한 부분은 전체와 형태가 같다. 해안선과 산 그리고 구름과 꽃양배추의 울퉁불퉁한 모양 등이 자기유사성의 연구대상이다.

이 연구는 주식 가격의 변동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연구하는 것 등에 응용된다. 부분적으로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크게 보아 일정한 패턴을 찾는 것이다.

일산 해안에 나타난 자기유사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공통된 인자는 화강암이란 동일 지질에 놓여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화강암은 수직과 수평으로 쪼개지는 절리현상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암석의 절리는 직선적이다. 이런 모습은 일산반도 해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화강암은 지하 8㎞ 지점에서 600년 가량 천천히 식혀져 굳어진다. 그 위를 덮었던 다른 흙과 암석들이 수백만년에 걸쳐 풍화돼 제거되면 동시에 땅속의 화강암을 눌렀던 어마어마하게 큰 압력도 제거된다. 그때 화강암은 팽창하면서 수직 수평으로 쪼개진다. 그 틈새에 물이나 나무뿌리가 들어가 풍화속도를 높인다. 단층운동과 같은 큰 힘은 작용하면 보다 크게 쪼개질 것이다.

화강암이란 동일한 지질을 바탕으로 한 일산반도 주변은 부분과 전체가 유사할 요건을 갖췄다고 볼수 있다.

단층이 땅덩이를 자르고, 파도가 깨트려 만든 이색지대

▲ 화강암이 결대로 쪼개진 부분적인 모습. 한 부분을 확대하면 동일한 요철 패턴이 보인다.

울산 방어진 일대 화강암내에 산출되는 포획암의 암석학적 연구(김종선 부산대 지질학과 백인성 부경대학교 응용지질학과 2000년 지질학회지)

이 논문이 인용한 여러 자료에 따르면 방어진 화강암은 지름이 3㎞ 가량인 원기둥형이다. 화강암은 방어진에서 주전동까지 이어져 있다. 화강암 지대에 안에는 동축사와 주전봉수대가 있는 산이 포함된다.

염포산(방어진공원)은 화강암이 아니다. 염포산은 울산 고유의 퇴적암이 단단하게 변성된 곳이다. 변성된 까닭은 화강암 마그마에 접촉됐기 때문이다. 이 화강암 마그마가 굳어지기 전의 온도는 섭씨 750도 가량으로 분석됐다. 이 온도가 전달돼 변성된 범위는 접촉부에서1~1.5㎞다. 이 곳에 남아있는 접촉부는 반달형이다. 주전 해안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암석더미들이 그 변성암이다. 방어진항 슬도에서 대왕암 사이에도 그 변성암이 일부분 있다. 퇴적층리가 잘 보이며 녹갈색 흑회색으로 치밀 견고하다.

방어진 화강암은 둥근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흐트러졌다. 단층운동으로 북동쪽(주전동 일부) 부분이 잘린뒤 1㎞가량 미끄러졌다. 미포단층이라 부른다. 이 단층이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12개의 특이한 절리도 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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