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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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차의과대학(전 포천중문의과대학) 정형민 교수의 훈훈한 미담이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줄기세포연구자인 정 교수가 2001년 대학 재단으로부터 생명공학 벤처기업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그것을 제자들 장학금으로 몽땅 대학에 기부하겠다는 뉴스였다. 그 스톡옵션은, 만기가 되면 주식시장에서 세금을 제하고도 무려 43억 원이나 평가되는 큰 금액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손꼽히는 생명공학 연구자로 그의 연구팀은 올 5월 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우석 박사 방식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갑자기 내린 결단이 아니라 늘 해 온 생각”이라고 심경을 밝힌 정 교수의 입장이다. 제자들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정 교수가 늘 입버릇처럼 “우리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얘기해 왔으므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숱한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기려 애쓰지만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이룩한 재산을 선뜻 사회에 내놓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정 교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이 돼서야 연구실을 나서는 생활을 되풀이해 오며, 한 달에 딱 하루만 쉬며 집안 경조사는 모두 아내에게 맡긴 채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해 왔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땀과 노력으로 일군 대가는 당연히 자신이 누려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대학의 지원으로 마음껏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던 혜택받은 인생”이라며 그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 주자는 뜻이었노라고 겸손한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의 기사를 접하면서 새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지도층의 도의적 의무)’를 떠올리게 된다. 굳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구미 선진국일수록 상류층의 기부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우리 국민도 예부터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돕는 따뜻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익명을 고집하며 거액을 대학이나 사회복지단체에 쾌척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이다. 대학 근처에서 김밥을 팔며 평생 모은 돈을 미련 없이 장학금으로 내 놓는 할머니, 폐지와 빈병을 모으며 먹을 것 입을 것 아껴 가며 수 십년 저축한 돈을 장애아복지시설에 맡긴 뒤 이름 밝히기를 끝내 거부하는 할아버지의 사연 등이 종종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아직 우리의 현실은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사회지도층 혹은 부유층이 재산형성 과정에서 도덕적 혹은 법적으로 남긴 얼룩들도 우린 자주 접하게 된다. 또, 그 치부를 서둘러 가리거나 지우려고 애쓰는 안타까운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도 막대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 주기 위해 편법증여를 일삼는 기업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각종 정보를 빼낸 뒤 부동산 투기에 이용하는 파렴치한 고위공직자가 신문 지면을 장식할 때면 일종의 서글픔마저 든다.

자유경제 체제 아래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富)를 쌓은 사람에게 누가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마는 아직도 일부 기업가나 고소득자들의 탈세 행각 또는 재산은닉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땅에서 모든 부자가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도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문득 몇 해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경주 최부자 300년 부(富)의 비밀’이란 책인데 최부잣집이 300년 동안 부를 이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다음 여섯 가지의 가훈에 있었다고 한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進士)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萬) 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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