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포도밭에 놀란 가슴
세계 최대 포도밭에 놀란 가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1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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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삿속 후한 인심에 또 놀라다
유목민들이 어쩌다 만난 오아시스에서 낙타나 양과 같은 가축들의 목을 축여 줄 정도의 물만 있을 줄 알았던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일대. 그 삭막한 사막이 오늘날 중국 최대의 면화 생산지이자 세계 최대의 포도 생산지임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연간 십 수mm의 강우량으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앞에서 살펴 본 카레즈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식으로 지정된 포도구는, 화염산 서쪽에 있는 폭 약500m, 길이 8km정도인 계곡의 수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투루판의 포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검붉은 색의 그런 포도가 아니라 민족시인 이육사가 내 고장 유월에 익어간다고 했던 청포도의 일종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청포도보다 알이 훨씬 작은 씨 없는 청포도로 당도가 매우 높아 맛이 있다. 마나이즈, 메이꿰이홍 등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13개정도의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고 하는데 연간 생산량이 6천 톤을 넘어 세계 최대의 생산량이라고 한다.

다른 종류의 과일도 많이 생산되는 이곳의 포도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유럽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포도 이외에도 멜론의 일종인 하미과(果)는 옛날 중국 황실에 진상(進上)되었을 정도로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고 한다.

수확한 포도는 주로 구멍을 숭숭 뚫어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든 건조장으로 옮겨서 건포도를 만든다. 건조장 안의 가로목에 널어 말리는 포도는 약품을 쓰면 20내지 30일, 자연 그대로 말리면 40내지 50일 정도 걸린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다.

이 포도구 말고도 투루판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지천에 널린 것이 포도밭이다. 길가에도 먹음직한 청포도를 널어놓고 팔고 있는 장수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시내 한 복판에 대리석으로 잘 포장된 폭 10여m, 길이 1.5Km의 거리 위를 실제 포도가 열리는 포도 넝쿨로 장식해 놓고 청년로(靑年路), 우리식으로 하자면 젊음의 거리라 이름 붙여 둔 곳도 있다. 투루판에서 저녁식사를 한 고려촌이라는 한식당과 인사동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한식당도 이 청년로에 있다. 또 카레즈 박물관으로 가는 길도 포도 넝쿨이 우거져 있는 길이다. 저녁이면 조명을 화려하게 밝혀 놓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렇게 많은 포도가 재배되다보니 자연히 포도주도 많이 생산된다. 현지 가이드는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맛이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그의 추천에 따라 저녁식사 때 가장 질이 좋다는 포도주 한 병을 시켰다. 하지만 심심하기 그지없는 것이 와인도 포도 주스도 아닌 어정쩡한 맛이다. 한 잔도 제대로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다.

회족(回族)이 경영하는 시가지 변두리의 한 포도농장을 방문하였다. 어깨 높이 정도로 자란 나무에 잎인지 열매인지 얼른 구분이 되지 않는 청포도가 빼곡하게 달려 있다. 농장에서 일 보는 사람이 작은 바구니와 가위를 주면서 마음껏 따먹고 나서 한 바구니씩 따서 가져가라고 한다. 모두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커 보이는 포도송이를 따서 우거적 우거적 씹어 먹는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그다지 많이 먹히지가 않는다. 웃고 떠들며 한 바구니씩 따서 나오니 무게를 단다. 찜찜해하는 우리에게 그냥 얼마나 땄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니 염려 말라고 한다.

이어 농장 주인이 나오더니 자기 집으로 안내한다. 전형적인 이슬람 양식의 주택인데 이층으로 되어 있고 채색이 마치 우리의 단청처럼 곱게 되어있다. 안내된 이층의 회랑형(回廊形) 마루에는 양탄자가 깔려있고 방금 실컷 먹은 청포도와 수박 그리고 그들의 주식(主食)인 구운 밀가루 빵인 ‘낭’을 비롯한 몇 가지 음식으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주인장이 자기 집을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며 마음껏 먹으라고 인사를 한다. 잠시 후에는 주인의 동생들이라는 젊은 남녀가 전통 복장으로 마당에서 아라비안 스타일이지만 비교적 단순한 동작의 민속춤을 추고 이어서 신바람 난 일행 몇몇이 따라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사이 거실 겸 안방, 그리고 기도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주인의 친척이라는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허락 없이 들어와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오히려 친절히 안내를 해 준다. 이를 본 일행 몇이 따라 붙었다. 가구는 붙박이 장 위주로 단순하지만 벽과 천장 그리고 창문은 무척 화려한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 그런데 문양들은 모두 꽃이나 식물들로만 되어 있다. 안내하던 여인의 말로는 평화를 사랑 하고 살생을 싫어하는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잠시 후 마당 한쪽에 덮개가 씌워져있던 매대(賣臺)가 열리고 건포도 판매가 시작된다. 모두들 선물용으로 사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눈으로는 구분이 잘되지 않지만 약을 뿌려 말린 것은 싸고 자연 건조시킨 것은 비싸다. 가격은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이 한 것은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말린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 건포도와 함께 좀 샀다.

그런데 가격이 미리 알고 온 것 보다 상당히 비싸다. 결국 실컷 따먹은 포도, 바구니에 담아 나올 때 무게를 달았던 포도 그리고 방금 대접 받았던 음식 값에 민속 춤 보여준 값은 물론 현지 가이드의 수고비까지 다 계산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이 투루판 땅이 자고(自古)로 어떤 땅인데 공짜가 있겠는가?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로 각국의 장사치들이 이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왕래하던 이들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곳임을 잠시 잊었던 필자 일행이 어리석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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