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남긴 것
그 날이 남긴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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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시부모가 손자들에게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이면 요즘 며느리들은 기겁을 한다.

투박스럽다 못해 불결해 보이기까지 하는 손 때문이다. 갈라지고 굳어진 마디 사이로 보이는 ‘세월의 흔적’은 젊은 그 들을 놀라게 할만도 하다.

이 위생적인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해도 어머님 손맛이 나지 않는다”며 겸연쩍게 된장찌개를 밥상 위에 올려놓을 때다. 칠순 노모가 끓인 된장찌개 맛을 젊은 며느리가 쫓아가지 못 하는 것은 기술 때문이 아니라 옛 것에 대한 향수 탓이다.

어릴 적부터 몸에 베어 온 ‘그 무엇’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리워지고 애틋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뚝배기 보다 장맛인 게다.

머릿속은 텅 비고 생각이 없어져 영상을 그냥 받아들이는 상태를 망연자실이라고 한다.

숭례문이 불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망연자실 보다 더 짙은 싸한 뭔가가 가슴을 훑고 내려감을 느꼈다. 시꺼멓게 불탄 서까래와 기왓장들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낀 것은 다른 것이였음을 시간이 좀 지난 뒤 깨달았다. 없어질 것에 대한 그리움과 뒤 이어 찾아 올 불안감이 바로 그 것이 였다.

2년 전 모형 제작용으로 만든 도면이 182장 남아 있단다. 지난 68년 발간된 수리 보고서도 숭례문 복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200억 들여 3년 공사하면 옛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진 모른다.

그러나 한번 깨진 ‘뚝배기’속의 장맛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국보 1호가 불 타 없어지는 모습을 보고 첫 번째로 우리가 느낀 것은 없어질 것 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함이 옳다. 그 그리움이 가져다 줄 상실감 때문에 사람들은 더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자년 정초에 600년 이상 된 국보가 불 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지금껏 우리가 쌓아 온 것도 무너져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길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천재지변, 길흉횡재를 주변의 사건과 연계 시켜 보는 한국인의 성향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도 훼손 되지 않았던 건축물이 사라진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혹자도 있음을 말한다.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들 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번 사전이 ‘움찔함’을 던져 준 것은 사실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모습과 그 날의 상황을 대비하며 불안해 할 수도 있다. 결자해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섭섭하다.

‘초상집엔 손님이 많아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기억난다. 슬프고, 괴로운 일 일수록 사람이 들 끊어 부산을 떨어 줌으로써 고통을 상쇄 할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시꺼멓게 타 버린 우리의 유산 주위엔 스산할 정도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가슴 메어져 하는 시민들이 조화를 앞에 두고 고개 숙이는 모습이 가끔 보일 뿐 대통령이 왔다 갔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9.11 테러 직후 붕괴된 세계 무역회관 건물 주위에 꽃을 들고 줄 지어 서 있던 미국인들을 존경해야 할 이유를 이제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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