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희의 공감수필] 치킨 두 조각
[고은희의 공감수필] 치킨 두 조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2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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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행사장에 다녀왔더니 식탁 위에 양념치킨 두 조각이 남아 있다. 믿고 먹는 브랜드 치킨은 거짓 없이 맛있다.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데도 치킨과 갓 구운 빵을 보면 이성을 잃고 저절로 손이 간다. 남편과 딸은 감시카메라가 되어 치킨에 눈을 돌리는 순간부터 저지하는 눈길을 보낸다. 작은 크기의 두 조각이니 한 번 봐 달라고 통사정을 한 후 허락받고 냉큼 먹었다. 맛은 정직했다.

다음날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어제 남은 치킨에 관해 물었다. 두 조각이라 당연히 다 먹었다고 했다. 아들과 딸은 치킨 마니아인데, 다양한 브랜드의 치킨을 즐긴다. 딸애는 엘리베이터에 번진 치킨의 냄새만으로도 브랜드를 곧잘 맞춘다. 다양한 치킨을 먹는 딸과 달리 아들은 최애 치킨이 있고, 가끔 먹고 싶은 다른 브랜드의 치킨을 먹는다. 아들이 말하는 치킨의 정석이라고 하는 브랜드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고 빠져드는 발라드 황제의 노래처럼 넘볼 수 없는 맛이 느껴져서 시켜 먹는다고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발라드 황제의 노래 ‘거리에서’를 틀었다. 아들의 말처럼 언제 들어도 은은하고 깊이가 있는 노래라는데 수긍했다. 가수의 노래는 오리지널 치킨 맛이 아닐지 생각한다.

어제는 문학상 수상자의 강의를 들었다. 1시간여 동안은 작가 문학의 세계에 대해 들었고, 나머지 1시간은 질의응답의 시간이었다. 질의응답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은 이날 강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스물에 등단하고 40년째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는 40년 동안 매년 책을 발간했다. 신진작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들의 글이 좋은데도 작가로 이름을 올린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중심을 잡은 결과이다. 신진작가의 참신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참신한 기획력 위에 연륜과 성실함이 보태진 결과일 것이다. 그의 강연은 담백한 구운 치킨 맛이 느껴졌다.

딸애는 부리에 음식을 저장했다가 새끼들에게 나눠주는 모성애가 강한 펠리컨을 모티프로 탄생한 치킨을 시켰다. 양념과 프라이드가 담긴 치킨 박스에 절로 눈길이 갔다. 강한 향에 이끌려 입맛을 다시면서 딸애를 쳐다보았다. 한 조각도 주지 않겠다는 결연의 의지가 담긴 눈빛이다. 내가 체중 감량을 해야 하기에 딸애는 철저하게 내가 먹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이럴 거면 왜 냄새를 풍기면서 먹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음식이 넘쳐나고 못 먹고 사는 시대에 양념 냄새에 반해 식욕이 급격하게 상승하는데도 먹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딸이 왠지 야속하다.

예전에 월급날이면 가족을 위해 누런 봉투에 튀김 닭을 싸간 적이 더러 있었다. 지금처럼 통닭을 튀기는 시간을 맞추는 것도 아니어서 온도를 한눈에 측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치킨집 주인은 감으로 온도를 알고 익힘 정도를 안다. 치킨의 냄새도 시간차별로 다름을 느낀다. 다 튀겨졌을 때는 강한 고소함이 느껴진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기다린 끝에 담아간 통닭 한 마리는 단순 음식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추억의 음식이었다.

설거지하는데, 음식물 찌꺼기 통에 치킨이 담겨 있는 게 보였다. 식탁 위에는 작은 치킨 두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가 더는 먹을 수 없도록 먹다 남은 치킨을 버린 것이다. 건강한 몸 만들기를 위해 만다라트 차트를 활용하고 있는 딸애의 꼼꼼함을 칭찬하고 싶다가도 지독함에 백기를 들고 소심하게 눈을 흘기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한다. 남겨진 치킨 두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더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고추 맛 치킨보다 딸애의 눈초리가 더욱 맵게 느껴졌다.

채움 못지않게 비움도 중요하다. 단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을 덜 먹도록 노력해야겠다.

고은희 울산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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