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깊은 내 마음을 내보이는 일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깊은 내 마음을 내보이는 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25 2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6) 최길숙-사랑은 시가 되어

 

시인이 가진 별명이 있다면 천형(天刑)이다. ‘하늘이 내린 벌’이라는 말이다. 피하고 싶어도 도리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宿命)이다. 선택한 일은 버릴 수도 없고 외면할 길도 없다. 곱다시 어느 날 무작정 나갔다가 비에 흠뻑 젖은 몸처럼 그렇게 가야 한다. 작가가 된다는 일은 허명(虛名)이나 명성(名聲)을 얻는 일이 아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들꽃처럼 그렇게 누군가 가슴에 꽃피우는 일이다. ‘꽃 활짝’이란 닉네임을 한동안 사용한 걸로 알고 있다.

2016년 6월, 한여름이 시작될 무렵 낸 첫 시집, ‘사랑은 시가 되어’. 시편들은 마치 성서처럼 읽혔다. 한편 한편이 거룩한 말씀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난을 엮고 사랑을 이은 그 지난(至難)한 끈기를 확인했다. 한줄 한줄이 어쩜 그리 섬세하게 찬찬히 수를 놓았는지 곱씹어 읽을수록 마음에 착 감긴다.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시인은 ‘결핍’이 오히려 자양분이 됐고 무기가 됐다. 흔들림을 나타내지 않는 잔잔함. 그 밑에 밝히지 않은 결심이 보인다. 작가에게 있어 쉬는 때를 말하는 ‘휴지기’(休止期). 그녀와는 관계없을 듯하다. 매일 ‘어떻게’를 고민하기는 커녕 ‘무엇을’을 위해 전진하는 사람이다. 원천은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시, 근원인 된 ‘산골 아이’를 따라 가본다.

‘개나리 진달래/만발한 그곳//배추 나비 흰나비/ 길 안내하는 그곳//산골 아이 신바람/봄나들이 간다네//버들가지 물오르면/ 가슴엔 꽃물 든다네//혼자서 팔딱팔딱/ 봄노래 한다네’ <산골 아이·2 전부>

경쾌하게 읽히지만 유년(幼年)을 감추는 슬픔이다. 가족 서사도 그렇다.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식구들 이야기, 그 속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점을 발견한다. ‘잃어본 사람만 소중함이 무엇인지 안다’는 ‘그곳엔’이란 시에서 말한 대로 ‘슬며시 고인 눈물’이다.

최 시인 시는 겉멋이나 화려한 치장이 없다. 입성은 수수하되 정갈한 매무새다. 드러난 글은 속이지 못한다. 꾸미지 않은 글이 매력 있듯 말이다. 모름지기 글 짓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왜곡하고 비트는 일에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부끄러운 세상을 한 번도 흉내 내지

않은 사람이다. 동화, 동시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시인은 어느 갈래를 택하든 결과는 감동을 선사할 게 분명하다. 곁눈 주지 않고 갈 길 가는 사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가는 길 잊었나요/밤새워 졸았나요/왜 아직 못 갔나요/무엇이 그리 아파/구름에 기대앉아/여지껏 상념에 잠겼나요’ <낮달·1 전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길은 반드시 ‘도착’이 기다리고 있지만 과정은 ‘쉼’에 있다. 한 박자 늦추는 일은 그리움이고 생각이다. 지름길을 완성하는 꿈이기도 하다. 앞서 ‘결핍’을 언급했다. 결코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채우는 사람이 작가다. 충만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헌신하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인은 이미 성공했다. 갈망을 원망으로 바꿔 놓은 적 없으며 기다림을 절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무도 없는/낡은 벤치에/들러붙은 그리움//슬퍼하다/귀 기울이다/바라보다//차곡차곡/쌓인 추억을/하나씩 펼치고 있네’ <간이역·1 전부>

1, 2, 3, 4…로 연결한 연작시가 유난히 많다. 할 말을 쪼개 속내를 드러낸다. 시인은 말한다. “시골에서 막 자란 들꽃 같은 날들이 있었기에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공존한 감성들이 지금까지 줄곧 내 곁을 지켜줬습니다.”

시인은 한때 음식을 만들었던 요리사였다. 낯선 이에게 맛있는 한 끼를 제공했다. 물론 대가를 받는 일이었지만 항상 ‘덤’을 얹어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해는 익숙하고 이익은 나중 생각하는 그런 이였다. 누군가를 대접하는 일은 결국 ‘사랑은 시가 되어’ 나타났다.

살다 보면 ‘방전’은 일상이고 ‘충전’은 하고 싶어도 겨를 없을 때가 많다. 부디 최 시인, 지금은 이룰 일 때문에 잠시 ‘멈춤’인 걸로 알고 있다. 결코 ‘주춤’은 어울리지 않는 자격지심임을 말해두니 분발(奮發)하길 바란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