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4
[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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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il49@naver.com

“아마 절집 아주머니가 일찍부터 와 있었던 모양이네요. 이렇게 집 안을 말끔하게 청소까지 해놓은 걸 보니.”

한동안 눈길을 반들거리는 마루에 주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고마운 분이구먼. 참, 이 골짜기에는 모두 몇 집이나 사나?”

“칠팔 년 전만 하더라도 꽤 여러 집이 살았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노인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기도 하고 더러는 도시로 나가버린 탓에 지금은 겨우 서너 집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렇구먼.”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 골짜기에 남아있는 우리 세 집을 가리켜 자기들끼리 나름 이름을 지어 부르더라고요. 우리 집은 통나무집, 이 집은 토굴집 그리고 기와집은 절집이라고. 허허.”

“이름이야 뭐 아무려면 어쩌려고. 참, 아랫마을엔 모두 몇 집이나 되지?”

“아마 열댓 집 정도 될 겁니다. 그 사람들은 이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과는 거의 왕래도 없어요. 왕래가 없다 보니 거리상은 가까워도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럴 테지. 사람은 서로 자주 얼굴을 대하고 살아야만 정도 생기는 법이지. 안 보고 사는데 정이 생기겠어.”

“아참, 행운 펜션도 있었네.”

눈을 커다랗게 뜨며 아버지가 말했다.

“이런 산속에도 펜션이 들어와 있다고?”

“형님, 아까 보셨잖아요. 개울 건너편 숲 사이로 불빛이 보이던 곳이 바로 행운 펜션이에요. 그 펜션이 문을 연 지는 한 삼 년 정도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장은 뭘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형님도 알다시피 이곳의 물이 좋기로 좀 소문이 나 있지 않습니까.”

“이곳은 공기도 좋지만 나도 좋다는 약수를 보고 이사를 결심한 게야.”

“형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장은 약수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그저 음식을 먹고 난 그릇을 닦거나 세차를 하는 데만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겨울이면 이곳은 눈도 많이 쌓이는 데다가 춥기까지 해서 펜션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약수를 활용해 휴양지로 활용하면 훨씬 경제성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매일 술판만 벌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나 부르고 춤만 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 같아요.”

목 근육을 푸느라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니까.”

“그나저나 덩그러니 비어있던 이 토굴집에 형님이 오셔서 사시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면 집이든 사람이든 다 인연이 따로 있나 봅니다.”

아버지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사람이든 집이든 다 인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는 법이지.”

“형님, 이 집이 이래도 참 튼튼하게 잘 지은 집입니다. 건축업자가 손수 지었거든요. 그러니 좀 잘 지었겠어요. 이 마루를 한번 보세요. 원목을 그대로 깔았잖아요. 이런 원목은 때가 끼어도 걱정 없어요. 대패로 한번 쓱 밀어버리면 다시 새 마루가 되거든요.”

아버지가 손으로 통나무 식탁을 만지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이 통나무 식탁은?”

점식이 삼촌이 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볼품은 없어도 재질이 통나무라……형님이 오시면 쓰시라고 서툰 솜씨지만 제가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허허허.”

“원 사람도 참, 별걸 다 신경을 썼구먼. 앞으로 자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구먼.”

“당연히 그래야지요. 형님이 이 낯선 산속에 저 하나 믿고 오셨는데.”

나는 아까부터 점식이 삼촌이 이 집을 가리켜 왜 토굴집이라고 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점식이 삼촌은 그런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본 것 같았다.

“이 집이 토굴집으로 불리게 된 건 집터가 길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형님도 날이 밝으면 밖에 나가서 한번 쭉 둘러보세요. 외관상으로 봐서는 집이 길보다 낮아서 좀 뭣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장점도 많아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외풍도 적고….”

점식이 삼촌이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점식이 삼촌을 배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창부터 열었다. 달은 하얀 조각이 되어 서쪽 산허리에 걸려있었고,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은하수의 형체가 또렷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온통 숲으로 우거져 있었다.

숲을 덮고 있던 푸른빛이 도는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여명이 밝아왔다.

이 산속의 여명은 푸른빛으로 잉태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상큼한 솔향이 코를 자극했다. 서울 지하 방에서 풍기던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15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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