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3
[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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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il49@naver.com

저만치 바라보이는 이정표에는 강원도라고 써놓은 글자가 보였다.

“벌써 강원도인가 본데.”

작은오빠가 말했을 때 창밖을 내다보며 내가 말했다.

“생각보다 멀지 않네.

“밤이라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그럴 거야.”

그때까지 언니는 아랫입술을 쑥 내밀고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 언니가 야구 모자를 눌러쓰며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일단 가 보고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판단될 땐 미련 없이 다시 서울로 와 버릴 생각이야.”

앞에서 달리고 있던 트럭이 갑자기 시멘트로 덮여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눈앞에 흐릿한 불빛이 보였다. 폐차장, 행운 펜션, 고향슈퍼, 약수터, 처녀바위골이라고 적어놓은 안내판을 비추고 있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폐차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흐릿한 수은등이 켜져 있었고 공터에는 자동차의 폐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공터에는 이동식 목조 주택이 보였고, 그 옆에는 패널을 이용해 지은 듯 보이는 사무실도 있었다. 사무실 유리창은 버스나 혹은 대형 트럭의 앞면 유리를 뜯어다 맞춘 듯 보였다. 마당에는 트럭 한 대와 승용차 한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폐차장을 지나고부터는 사방이 산으로 덮여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집이라곤 보이지 않아서 도무지 사람이 살기나 할까 싶었다. 저만치 산 아래로 십여 채 남짓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이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향슈퍼 간판을 비롯해 서너 집 정도였다.

슈퍼가 들어와 있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트럭이 고향슈퍼를 끼고 곧장 언덕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트럭이 외딴집 앞에서 멈추었을 때야 비로소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식이 삼촌이 이쪽으로 걸어와서는 작은오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다 왔어. 이 차를 저 트럭 앞에다 세우라고.”

곧 트럭에 올라간 점식이 삼촌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오빠가 달려가 점식이 삼촌이 건네준 짐을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축해 조심조심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언니와 함께 각각 트렁크 하나씩을 끌고 크고 작은 돌이 삐죽삐죽 박혀있는 길을 따라서 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꽤 넓어 보이는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은 어둠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환한 불빛 아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마루가 보였다. 주방 쪽에서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반겼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점식이 삼촌이 말했다.

“네. 아무래도 밤이라 차가 밀리지 않아… 그나저나 오늘 애 많이 쓰셨어요.”

“뭘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형님, 이분이 제가 말씀드렸던 그 절집 아주머니세요.”

아버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예. 우리 아우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참으로 신세가 많습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이제 이웃이 되셨잖아요.”

절집 아주머니는 곧 통나무 식탁 앞으로 걸어가서는 분홍빛과 노란빛의 천을 어슷한 모양으로 잘라 붙여 만든 보자기를 벗기며 말했다.

“제가 수정과와 인절미를 조금 가져다 놓았어요. 출출하실 텐데 먼저 이것부터 좀 드시고 짐은 천천히 정리하세요. 짐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아마도 열흘은 족히 걸릴 겁니다. 저희도 그랬으니까요.”

절집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이내 손전등을 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반들거리는 마루를 따라가 보았다. 왼쪽에 안방이 있었고 안방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가니 주방이 나왔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천장이 높아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서울 집에 비하면 어림잡아도 삼십 센티는 더 높아 보였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왔는데도 어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어머니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서방님, 이 깊은 산중에 이렇게 아늑한 집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형수님께서 집이 아늑하다고 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삿짐을 모두 집 안으로 들이고 났을 때 아버지와 점식이 삼촌이 통나무로 된 식탁 앞에 가서 앉았다. 아버지가 포크로 인절미를 집고 있을 때 점식이 삼촌은 튀어나온 목젖을 떨며 수정과부터 쭉 들이켰다. 컥! 하고 트림을 하고 나서 점식이 삼촌이 말했다.

▶14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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