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걸산 이야기 셋
능걸산 이야기 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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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중순, 봄 화단에 찰랑대는 귀고리 같은 히어리(꽃말: 봄의 노래)가 처음 꽃망울을 터트린 것도 애써 외면하며 양산 능걸산을 찾아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윽고 일행이 탄 승용차는 양산교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돌아 충렬로를 잠깐 달렸다.

유산교를 눈앞에 두고 왼편 어실로(御室路)로 접어들었다. 양산천을 뒤로하자 곧이어 유산천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였다. 어실로는 목적지까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유산, 학동, 중리, 동리, 화룡, 용선 등 마을을 차례로 뒤로했다. 부처골도 지나고, 큰골도 지났다. 승용차 엔진이 열기를 한껏 뿜어낸 후에야 도착했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능걸산은 해발이 783m이다. 산의 지리적 특성을 보면, 정상 부근은 산지 습지와 화강암이 잘 발달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주위에는 너럭바위, 까딱바위, 암능(일명 기차바위), 수박바위, 범바위, 자라바위, 전망바위와 같은 다양한 이름의 바위가 흩어져있다. 능걸산은 세월만큼이나 산지 습지, 진성여왕, 우운 스님 등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 이야기 하나, 양산 능걸산 산지 습지

“양산시 원동면 일대 해발 730~780m 지역에 있는 고산 습지는 한반도 남동부 내륙지방에 분포하는 고산 습지로서 자연환경 및 지형·지질학적 가치가 높으며 삵, 담비 등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과 두꺼비, 고슴도치와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자주망귀개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지정연월일:2004년 2월 25일” 습지 안내문이다.

※ 이야기 둘, ‘능걸’

능걸산의 ‘능걸’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임금의 나들이와 임금의 묘 즉 능묘의 존재 등 두 가지 유래설이 있다. 먼저 ‘임금의 나들이인 어곡(御谷) 설’과 ‘임금이 거처하는 곳인 어실(御室) 설’이다. 현재의 지명 어곡(魚谷·고기가 많은 골짜기) 또한 어곡과 어실의 바탕 설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의 능묘 존재 설이다. <삼국사기> 권 11, 신라본기에 ‘겨울 12월 을사에 왕이 북궁에서 돌아가니 시호를 진성이라 하고 황산에 장사지냈다(冬十二月乙巳 王薨於北宮 諡曰眞聖, 葬于黃山)’라는 기록이 있다.

양산은 신라 때 고을 이름이 황산(黃山)으로, 어곡 일대에는 능곡(陵谷)·능묘(陵墓)·능뻔더기와 같은 지명도 전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 이름이 능걸이라는 설이다.

※ 이야기 셋, 어머니 무덤

능걸산 산지 습지 주변에는 우운 스님 어머니의 무덤이 있다. 작은 지석(誌石)에는 ‘友雲大宗師 親母之墓 1609 通度寺’라고 적혀 있다. 400년이 지난 무덤인데도 불구하고 관리가 잘됐다. 우운 스님은 통도사의 중창불사(重創佛事) 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스님이다. 조선 시대 억불(抑佛)정책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전소된 전각(殿閣)을 중창했다고 전한다. 해마다 입춘이 지나면 통도사 스님들이 이곳에서 스님의 어머니 묘에 제를 올리는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주변의 크고 작은 둥근 모양의 화강암이 묘를 향하고 있다. 그 형상이 마치 승려가 예배하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능걸산은 자연 습지 생태는 물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명까지 품고 있어 양산의 보배이다. 지역 독창성의 보배창고를 이제부터라도 활용하여 정주민은 물론 이주민 그리고 관광객과 함께하는 거대 양산이 되기를 기원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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