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 칼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이병길 칼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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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치제도의 하나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그 어원으로 보면 데모크라시(democracy), 민중의 지배이다. 민중 다수의 의사에 따른 지배로 민중이 지배함과 동시에 지배받는 정치제도로 지난 수천 년간 정치적 실험의 산물로, 오늘날은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중과 지배이다. 최근 민주주의가 위험해지고 있다. 이는 민중과 지배가 위험의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데모크라시는 등장할 때부터 오늘날까지 어리석은 무리의 정치,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진실한 앎과 실천의 문제를 중시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알면 반드시 실천한다.”라고 주장했다. 앎이 행복을 주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보았다. 앎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습관적 훈련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참된 앎을 가진 다수가 올바른 공적 선택을 할 때, 다수의 보편적 이익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공자가 “정치란 바름의 실천(政者正也)”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는 어리석음을 없애고 보편적 이익인 박애·평등·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민주주의 위기는 언제든 올바른 앎과 실천이 어긋날 때 일어났다. 공적 이익이 국가적 이익이나 사적 욕망의 표현으로, 이성적 선택이 아닌 감성적 선택 즉 비합리적 의사 표현으로 나타날 때 가장 위험하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그 산 증거이다. 이성의 파괴는 결국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 현재 지구상에 일어나는 전쟁은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는 교육과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류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노무현은 ‘깨어난 시민들의 조직적인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한 적이 있다.

최근 디지털의 파편화된 정보가 개별적으로 수용되는 정보 과다 현상과 함께 디지털 유목민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은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소비 중심의 사회는 공적, 보편적 가치보다 사익 중심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전통적 올바름의 기준이 흔들리고, 다양성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신자유주의는 공동체보다 유목민적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그 결과 다수의 선택은 파편화되고 때로는 감정적 선택을 한다. 민중의 선택이 탈 이성화될 때,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시민혁명으로 공화정이 채택되자 데모크라시는 지배 방식이 왕에서 민중으로 이동했다. 제왕의 개인적 판단을 제어하기 위해 삼권분립을 통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게 했다. 또 소수의 지배자가 아닌 약자인 다수의 이익을 옹호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절차적 정의를 통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왔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를 통해 다양한 사람의 가치 표현을 보장해 왔다.

공화정은 세습적 절대왕권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서 한 국가 경영을 맡기고 있다. 어쩌면 공화정은 선출직 제왕을 허용한다. 삼권분립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선출된 지도자의 가치에 따라 국가가 경영된다. 그가 히틀러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잘 작동하는 미국과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그 정치 지도자들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현존하는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견제와 균형의 제도를 교묘히 이용하여 제왕적 통치를 하는 경우가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로 통치하는 제왕적 지도자의 등장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한다.

정치제도로서 생활상에 작동하는 민주주의. 민중과 지배의 문제가 오늘날만큼 심각하게 등장한 적은 없다. 민주주의를 정말로 주의(主義)로 생각한다면 주의(主意)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民主). 민중이 주인이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을 때, 진정 데모크라시는 안전하게 된다. 주인의식이 없는 노예 의식으로, 주권자가 아닌 피지배자로 전락하는 비이성적, 감정적 사적 이익에 기반할 경우,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은 제왕적 지도자가 안하무인(眼下無人), 민중을 깔보는 상황을 가져온다. 제대로 된 의식적 민중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삶의 상황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안하무인의 지배자가 등장할 수 있다.

지구 여러 곳에 전쟁이 일어나고, 동아시아는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신냉전의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 위기가 코앞에 닥쳐와도 디지털 화면 속에 빠져 스스로 안하무인이 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바쁘다. 공동체의 위기는 개인의 무관심에서 발생한다. 사회를 버티는 올바른 앎과 정의적 실천이 사라진다면 민주주의는 위험한 제도로 남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이 염려한 사회는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 오고 있지만 아직 모를 뿐이다.

이병길 (작가, 항일독립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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