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파트2’ 종교와 신화, 우주에서
영화 ‘듄:파트2’ 종교와 신화, 우주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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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2'의 한 장면. 

적당히 재밌는 SF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반지의 제왕>시리즈 급은 아니라도 독특하고 웅장한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 폴(티모시 살라메)의 복수극이 흥미를 더하는 그런 SF판타지물. 2021년 10월 <듄> 1편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랬다.

제대로 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귀한 요즘, 그래도 <듄> 시리즈는 1편을 본 이후 쭉 기다려온 작품이었고, 해서 2편이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다. 하코넨 가문에 의해 몰살 당한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마지막 희망으로 폴의 화려한 복수를 예상하고 스크린을 응시하기 시작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폴의 정체성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그냥 쭉 영웅일 줄 알았던 폴이 프레멘(사막 행성인 아라키스의 원주민 종족)들에 의해 신격화가 이뤄지는 그 과정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는데 그렇다 보니 그러한 신격화에 홀로 반기를 들었던 챠니(젠데이아 콜먼)의 실존주의적 시선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더라.

해서 집에 와서는 <듄>시리즈에 대한 내 얕은 지식을 탓하며 배경지식들을 찾아보게 됐는데 특히 ‘현이버스’라는 한 영화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영화의 토대가 된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소설 <듄>이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히어로물) SF판타지 작품이 아니었던 것. 그러니까 소설이 출간된 60년대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공지능(AI)’의 위협을 미리 예견하고, 거기다 수천 년 넘게 인류를 지배해온 ‘종교’나 ‘신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 영상을 많이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아니, 아예 베낄까 해요. 영상이 너무 훌륭해서. 뭐, 그러면서 저도 한 주 정도는 날로 먹는 거죠. 훗.

가깝고도 먼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다른 행성에 수많은 콜로니(식민지)를 건설하게 되고, 지구 문명이 소행성 충돌로 사라진 뒤 그 행성(콜로니)들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다루고 있는 <듄>에서 폴의 신격화는 프랭크 허버트가 원작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실제로 소설을 집필하기 전 6년 동안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각종 종교들과 신화들을 연구했던 프랭크 허버트는 종교와 정치가 혼재해 작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고하고 싶었고, 종교나 신화를 믿는 인간심리와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종교와 신화는 인간의 나약함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 원작소설 속에서는 “억압이 있는 곳에 종교가 번성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나 “희망은 (객관적)관찰을 흐리게 만들어”라는 대사들로 표현된다.

결국 <듄>은 인류를 번영시켜 구원의 땅을 이끄는 메시아(구원자, 영웅)의 등장마저 인간의 이기심과 우매함으로 벌어진 종교갈등이나 파시즘과 전쟁 역사의 모순을 일으키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100년에 걸쳐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중세 십자군 전쟁부터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떠올려보시길. 또 작가는 대략 서기 2100년부터 시작해 1만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억겁(億劫)에 이르는 우주적인 시간 속에서 찰나(刹那)에 지나지 않는 메시아(폴)의 탄생과 몰락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관련해 1990년 6월 미 NASA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카메라를 뒤로 돌려 찍은 오른쪽 사진을 한번 봐주시길. 동그라미 안의 작고 창백한 푸른 점이 바로 지구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고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런 시(詩)를 썼다. “여기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와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여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 - 서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 짜더러 우주에서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닌 거다. 2024년 2월 28일 개봉. 러닝타임 166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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