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아를’같은 명품도시를 갖고 싶다
- 309-‘아를’같은 명품도시를 갖고 싶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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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애정이라는 것. 아무리 상대를 경멸하려 해도 애정을 단념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프로방스 지방 어느 농가의 아들 장은 아를의 여인을 사모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바람기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장은 그녀를 잊지 못했고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즈음 한 남성이 장의 아버지를 찾아와, “2년여간 그녀와 연인 관계였는데, 장과 결혼하겠다는 말이 나돈 후 자신을 버렸다”고 폭로한다. 결국, 결혼은 무산됐다. 장은 겉으로는 사랑의 열병을 이겨내는 듯했으나, 결국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창문으로 투신한다.

프랑스의 문호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아를의 여인’의 줄거리다. 위의 대사는 장이 사랑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쥐어짠 독백이다. 비록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알퐁스 도데의 절제된 언어와 경이적인 상황설정으로 짧은 소설이어도 큰 감동을 남긴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시 아를은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산맥 자락의 작은 시골 도시다. 알퐁스 도데는 이 도시에서 불과 35㎞ 정도 떨어진 니므에서 태어났다. 알퐁스 도데는 짧은 소설에서 남부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과 풍토 등 세부 묘사를 매우 치밀하게 담았다. 아를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알퐁스 도데의 문학적 배경이 된 도시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부터 1년 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도시다.

고흐는 이 도시에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걸작을 남겼다. 그가 자주 드나들었던 카페 ‘드 라 가르’의 여주인인 지누 부인의 초상화와 아를 지역 여성의 일상생활을 그린 연작 ‘아를의 여인들’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손꼽힌다. 고흐는 아를에서 그의 화가 생활 중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고 예술의 꽃을 피웠다.

고흐가 프랑스 예술의 중심인 번다한 파리를 떠나 강렬한 태양과 푸른 전원이 있는 아를에 정착한 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다른 빛, 이렇게 강렬한 태양을 보고 싶어 한 것은 프리즘의 색깔이 북쪽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있다. 한 예술가에게 파리라는 거대도시보다 자연이 살아있고 인간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존재하는 아를이라는 도시가 준 감흥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아를에는 지금도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이 모여들어 일 년 내내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알퐁스 도데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적 고향인 도시의 혼을 느끼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가 몰려든다. 라벤더, 해바라기, 올리브 숲이 곳곳에 있고 습지대, 야생마, 핑크 플라밍고가 유명한 아를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태생적으로 산수가 아름다워 누구나 탄복할 만한 도시가 있고, 위대한 예술가나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의 족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도시도 있다. 한 도시의 위상을 결정짓는 데는 그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가고 가꾸느냐에 달렸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마을이 세계적인 예술의 본향으로 알려지기까지 기울였던 그 주민들의 노력을 생각해보자. 부럽고 질투가 나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기까지 그들이 살뜰하게 간직한 예술가의 흔적은 지금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바람기 있는 여인을 사랑했던 장의 사랑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진한 커피향을 풍기며 찻잔을 달그락거리는 지누 부인을 스케치하는 고흐의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우리도 아를이라는 보석 같은 도시 하나를 갖고 싶다는 갈증이 생긴다.

초금향 떡만드는앙드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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