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덕의 역사칼럼]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⑤
[배종덕의 역사칼럼]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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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나(支那)의 운명이 무너지던 ‘9년 홍수’ 때 고조선의 1세 단군왕검은 재위 67년(BC 2267)에 맏아들 부루를 우순(虞舜, 순임금, BC 2255~2208)이 보낸 사공과 도산(塗山)에서 만나게 해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해 9년 대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이로써 사공 우가 요순시대 다음의 하(夏) 왕조를 건국하는 운수를 열어주었다.

부루태자는 일찍이 치우천황으로 널리 알려진 신시 배달국의 15대 자오지천황의 국사(國師)였던 자부선사가 완성한 우주역법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을 바탕으로 만든 오행치수법과 함께 금간옥첩을 순임금의 우나라 사공(건설부 장관 격)에게 전해주었다. 「서경」에는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멀리 산천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고, 동방 천자를 알현하였다(東巡望秩 肆覲東后)”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나라의 사공 우는 부루태자에게 오행치수의 비결을 받고 지나의 9년 대홍수를 다스려 후일 하(夏)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있는 기록).

그러나 지나의 「오월춘추(吳越春秋)」는 ‘우(禹)가 사무치게 기도하자 꿈에 청수사자가 나타나 금간옥첩을 전달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경 주서 홍범서문」의 <한서 예문지>에서는 ‘우가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이 낙서를 내려 주었는데 그것을 본받아 진술하니 홍범이 그것이다’라고 왜곡하는 구절이 나온다. 꿈속에서 또는 하늘에서 ‘우에게 홍범구주를 내려 주시어 인륜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도 역사를 쓰면서 왜곡을 했다.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 금살치우(禽殺蚩尤) 즉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했다. 이게 거짓말이다. 배달의 14세 환웅 치우천황은 등극하자 구치(九治, 채광기계)를 만들어 구리와 철을 캐고 철을 단련하여 칼과 창, 큰 쇠뇌를 만들게 했다.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동두철액(銅頭鐵額=구리머리에 무쇠이마)라고 여겼다.

삼성기전 하편에는 훤원이 왕위에 오르자 바로 탁록으로 진격하여 훤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훤원과의 싸움에서 치우비(蚩尤飛)라는 우리 장수가 급히 공을 세우려다가 불행히도 전쟁터에서 죽는다. 「사기」에서 이른바 ‘금살치우’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또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편에는 ‘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봉기자어조선, 이불신야)’라는 기록이 있다.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기자는 조선에 와서 왕을 한 적이 없다. 회남자(淮南子)와 대대례기(大戴禮記)에는 단지 기자가 미친 척하며 몸을 숨겼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기자의 성은 기(箕)가 아니라 자(子)씨다. 설(契)은 상나라의 시조로 여겨지는 전설로 전해지는 인물로, 자설(子契)이라고도 한다.

설은 성인이 된 후에 우의 황하 치수를 도왔다. 순은 설의 업적을 평가해 사도(司徒)로 임명하고 상(商)에 봉했으며 자(子)라는 성을 주었다. 기자는 상(商)나라 30대 주왕 자수(子受)의 숙부였다.

기자가 죽고 나서 800년이 지난 뒤 기씨 성을 가진 자들이 고조선의 한 축인 번조선에서 왕을 한 적이 있었다. 고조선의 46세 보을단군 원년 12월에 번조선 69세 왕 해인(解仁)이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시해를 당했다. 단군 재위 19년에 읍차인 기후가 병사를 이끌고 번조선 궁에 진입하여 스스로 번조선 70세 왕이 되고 단군에게 사람을 보내 윤허를 청했다. 단군이 이를 윤허해주었는데 이때가 BC 323년이었다. 이후 기욱, 기석, 기윤, 기비, 기준 등 기씨 성을 가진 5명이 번조선의 왕을 지내다가 연나라의 위만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된다. 기준이 연나라 사람 위만 일행의 망명을 받아주었다가, 1년 뒤 강도로 변한 위만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기자의 성은 자씨이고, 기자가 죽고 나서 800년이 지난 뒤 기씨 성을 가진 자들이 번조선 왕이 된 것을 모두 연결해서 중국은 지금까지 고조선을 부인하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있었다고 우리 역사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 기자조선이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고, 위만조선은 망명을 받아준 번조선의 기준왕을 배신하고 정권을 강탈해서 86년간 존재하다가 한무제(漢武帝)가 보낸 군대와 전쟁할 때 신하들의 반란으로 멸망하고 만다. 그때가 BC 108년이었다.

배종덕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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