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1
[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1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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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il49@naver.com

◇토굴집과 통나무 식탁

아주 오래전, 당시 열네 살이었던 나는 강원도 산속 오지마을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네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서울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착잡한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점식이 삼촌이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트럭 표면에 입힌 파란색 페인트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아마도 점식이 삼촌이 새 트럭을 장만한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점식이 삼촌을 보자마자 아버지가 말했다.

“전화상으로도 말했듯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네 형수한테 할 수 있는 건 이 길밖에 없는 것 같아.”

“예. 형님. 잘 판단하신 겁니다.”

아버지가 점식이 삼촌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서…. 장마철도 아닌데 끈질기게도 비가 내리더니만.”

“그러게요. 형님.”

“자, 짐부터 싣자고.”

마침내 점식이 삼촌이 아버지와 작은오빠가 날라다 준 짐을 트럭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세 남자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윽고 트럭에 짐이 산처럼 쌓였다. 점식이 삼촌이 짐을 가득 실어놓은 트럭에 덮개를 씌우고 나서 밧줄로 단단히 동여맸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아버지가 점식이 삼촌을 쳐다보며 말했다.

“평창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세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할걸요.”

“세 시간 반이라.”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엿보였다. 솔직히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어머니가 자동차를 타고 세 시간 반을 버틸 수 있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터였다. 그때 작은오빠가 공터에 세워두었던 은색 승용차를 몰고 와서 트럭 뒤에다 세웠다. 그 은색 승용차는 큰오빠가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두고 간 것이었다.

평소 춥다고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던 어머니는 두꺼운 기모바지 속에 내의를 입고 털실로 짠 스웨터도 입었다. 그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되었던지 그 위에다 패딩 코트까지 걸쳤다. 둥글둥글한 어머니의 모습은 흡사 이불 보따리 같아 보였다. 작은오빠가 어머니를 부축해 승용차에 오르게 했다. 조수석은 어머니가 차지했고 나와 언니는 뒷좌석에 앉았다. 마침내 트럭에 시동이 걸리고 수직으로 뻗은 배기관에서 붕붕 소리를 내더니 엷은 잿빛 배기가스를 뿜어내며 바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오빠가 모는 은색 승용차도 곧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나는 동네 친구며 학교 친구들을 모두 뒤로한 채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로 가게 되었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이미 열네 살이 된 나는 우리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내세울 만한 게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공부였다. 매번 일등은 아니었지만 나름 반에서 다섯, 아니 어느 땐 세 손가락 안에 들 때도 있었으니까. 둘째는 글쓰기였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전교 일등을 두 차례 했고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글짓기 대회에 나가 대상도 탄 적이 있었다. 셋째는 선생님뿐만 아니고 애들과의 관계에서도 늘 원만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학교생활이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서울에서 있었던 모든 기억은 지워야만 했다.

어느새 서울 외곽을 벗어난 트럭이 나들목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그새 어머니는 잠이 든 듯 보였다.

삼 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어머니가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출발하기 전 복용한 모르핀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루도 모르핀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어머니는 통증이 심한 상태였다. 언니도 잠이 들었는지 헤 벌린 입과 코로 한껏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얼마 전에 아버지가 우리 삼 남매를 한자리에 모이라고 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우리 삼 남매는 네모난 상 앞에서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겁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각자의 인생에서 삼 년씩만 너희 어머니에게 봉사한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구나. 봉사라는 말이 뭣하게 들리면 효도라 생각해도 좋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기에 곤혹스럽기까지 한 탓에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언니만은 달랐다. ▶12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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