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독 우는 소리 (上)
[아침향기] 독 우는 소리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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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르릉 쩌르릉’ 소리를 내며 독이 울고 있다.

큰딸을 시집보내고 칠 년 만에 둘째 딸마저 시집보내고 나니 집안이 휑하다. 이제 남아 있는 자식은 막내딸 하나뿐이다. 가족 수가 줄어든 만큼 집도 세간도 죄다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쓸만한 물건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필요한 사람에겐 요긴하게 쓰일 법한 물건은 골라서 따로 쌓아두었다. 이튿날 물품명과 연락처를 적어 단지 내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해 질 녘 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은 잘 쓰겠다며 책상과 책장, 작은 냉장고, 그러고 선풍기 등을 가져갔다.

이제 남은 것은 항아리 몇 개였다. 이미 중간 크기 둘은 아래층 아주머니가 가져갔다. 한 참 후, 그 아주머니는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두 여인은 아담해서 마음에 든다며 작은 항아리 하나씩을 각각 품에 안고 돌아갔다.

이제 덩치 큰 독 하나만 처분하면 된다. 독은 키가 내 허리에 오고 둘레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두 팔을 벌려 껴안으면 양손 끝에 겨우 닿는다. 독은 생김새가 예쁘다거나 표면이 윤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삼십 년 넘도록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독에는 친정어머니의 체취 또한 내 손길 못지않게 묻어 있다.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이따금 집에 오시는 날엔 제일 먼저 장독대로 가시곤 했다. 그때마다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서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다독거리시곤 했다. 어느 땐 나를 불러 장 항아리도 간수 못 한다고 나무라시며 숟가락으로 꼭꼭 눌러주는 요령까지 일러주시곤 했다.

삼십 년 전, 신접살림을 차린 후 처음 맞는 봄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집주인 아주머니와 옆방 아기엄마가 함께 반들반들 윤이 나는 항아리에 장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땅한 항아리도 없었다. 때마침 집에 오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시장 골목에 있는 옹기전을 찾았다. 주인을 불러 보았으나 기척이 없었다. 갑자기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옹기를 쌓아놓은 곳을 기웃거렸다. 얼핏 남색 치맛자락이 독이 쌓인 틈새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했다. 그쪽으로 가 보았다. 그때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얼굴이 환해졌다.

때마침 주인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친정어머니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간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을 했다.

“아주 제대로 고르셨구려.”

잠시 후, 나는 그 노인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일이 있어서 먼저 옹기전을 나왔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손수레에 독을 싣고 노인과 어머니가 같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독을 보는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주인집과 옆방 아기엄마네 독에 비하면 너무도 볼품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외모가 못생겼거든 빛깔이라도 곱든지, 빛깔이 밉거든 표면이라도 매끄럽든지. 게다가 암갈색의 우툴두툴한 반점까지 못난 것은 죄다 갖추고 있었다. 옹기전에는 잘 생기고 표면이 반질반질한 것도 많았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못난이를 골랐는지 친정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이 상한 나머지 한 마디 불쑥 내뱉었다.

“팔리지도 않는 못난이를 사 온 거라구요.”

내 말이 서운했던지 어머니는 장만 담아 주시곤 곧장 친정집으로 돌아가 버리셨다. ▶下로 이어짐

최정원 <울새가 노래하는 곳> 지은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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