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나는 언제나 옷을 샀다?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나는 언제나 옷을 샀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1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5) 이소연-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 오래된 세월도 아니다. 우리 때는 새 옷을 사 입는 경우가 드물었다. 형제자매 옷을 물려 입거나 낡은 부분은 새로 덧대 기워 다시 입었다.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그깟 일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시대는 급변했고 다양성, 개성을 인정하는 현재이지만 ‘유행’을 너무 좇아가는 세태라 가끔 입맛이 쓰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이런 노래가 괜히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생활 커뮤니티, ‘당신 근처(당근)’ 에디터인 이소연 씨가 지은 책, ‘나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전 세계 문제로 떠오른 지 제법 된 ‘패스트 패션’ 문제에 집중한다.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 이를 빠르게 제작, 유통하는 의류를 그리 부른다. 주문 즉시 바로 찾아 먹을 수 있는 ‘패스트 푸드’처럼. 저렴한 가격, 다양한 디자인, 빠른 상품 회전율이 특징이다. 국내에도 이런 의류업체가 많이 들어와 있다. 상대 개념은 친환경,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의류를 칭하는 ‘슬로우 패션’이 있다. 자원 절약, 환경 오염 최소화, 노동자 권익 보호, 유행을 타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다소 가격이 비싸다.

한 조사에 의하면 옷장에 있는 옷 12~20%는 한 번도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험은 대부분 인정한다. 패스트 패션은 매주 4천500개 정도 생산된다. 지출 영수증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 손대게 만든다.

이소연 작가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작가는 실천력이 으뜸인 젊은이다. 2019년부터 이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기후 위기, 환경, 팬데믹 이후 인류와 지구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관련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해양 환경 단체인 ‘시 셰퍼드’ 회원으로서 한 달에 한 번 무의도를 방문, 물속에 버려진 폐어망, 폐어구, 폭죽놀이로 망가진 해변을 복구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이 밖에 쓰레기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도 살펴본 이다.

그녀는 과소비가 초래하는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가이기도 하다.

물론 개성이 드러나고 멋있는 옷을 입고 싶지만 아름답게 가꿔야 할 환경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탈 쇼핑족’ 일원이다. 엄마가 30년 전에 입었던 가죽점퍼, 4년 전에 5천원 주고 산 검은색 민소매도 아직 사랑한다. 해외 직구도 하지 않는다. 중고의류를 나눔 하는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패스트 패션 폐해(弊害)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심각하다. 수식화된 통계를 보면 아찔하다 못해 아득하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지구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 약 10%가 패션 분야에서 나온다. 이는 항공 및 해운 분야 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합성 섬유 한 종류인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양(量)은 우리나라 한 해 결과치와 맞먹는다. 패스트 패션 용어는 1989년 미국, 한 언론을 통해서나왔다. 특정 의류 회사명은 말하기 싫다. ‘패션쇼 런 웨이(run way)에 오른 제품을 무려 15일 안에 대량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6개월 걸리던 일이 제조, 출시, 유통까지 2주일 안에 해치울 수 있게 됐다. (요즘에는 1주일 만에도 가능하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잘 입은 옷이지 값비싼 옷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화려하거나 사치를 조장하려는 의도도 없다. 단정함, 수수함이 돋보이는 사람은 옷을 통해서도 마음이 읽히기 마련이다. 과시 수단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일, 값을 떠나 유행을 좇는 일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옷차림을 두고 가치를 논할 일이 아니다. 현명한 삶은 욕심을 버리되 그 욕심조차 싸구려로 대신하면 안 된다. 단, ‘옷을 산다’는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때다.

이 책 내용은 버릴 게 없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쓰는 단어, OOTD, 업사이클링, 미니멀리즘, 그린 워싱, 세컨드 핸드 등에 관한 용어 사전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책 뒤 부록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 옷장 실천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 항목에 이어서.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