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로 거듭난 태극기들
문화재로 거듭난 태극기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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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이 대한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3천만이 하나로….” 삼일절 노래의 시작 부분으로, 4대 국경일 노래 중 ‘태극기’를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다. 지금부터 105년 전인 1919년 3월부터 석 달 동안 방방곡곡에서 손에 손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나섰다. 일제는 비무장 선열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7천509명이 순국했고, 5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구금당했다. 교회 47곳과 학교 2곳, 민가 715채가 불에 탔다.

일제 강점기에 사용되었던 모든 태극기는 수난을 겪었다. 3·1운동 무렵의 태극기들은 거의 소멸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행히 용케도 보존되어 지정 문화재가 된 태극기들이 있다. “태극기 목판(일제 강점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일제 강점기)”, “진관사 소장 태극기(1919)”, “남상락 자수 태극기(1919)”, “대한독립만세 태극기(광복 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1(1923)”,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2(1940 전후)”, “김구 서명문 태극기(1941)”,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1942)” 등 9가지다.

이보다 앞서 조선말에서 대한제국기까지 만들어졌던 태극기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데니 태극기(1880년대 후반)”, “불원복 태극기(1905, 고광순 의병장)”,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1900~1911)”, “명신여학교 태극기(1906 이후)”, “동덕여자의숙 태극기(1908)”, “배설(Bethell) 유품 태극기(1909)” 등 6가지다.

이후 6·25전쟁 때도 태극기가 귀하게 사용되었다. 전쟁 중에 만들어져 문화재로 등록된 것으로는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1950)”, “경주학도병 서명문 태극기(한국전쟁 시)”,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Busbea) 기증 태극기(한국전쟁 시)”,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1950)”, “철희 사변폭발 태극기(한국전쟁 시)”,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1952)” 등 6가지다.

태극기의 문화재 등록 사업은 2008년에 시작되었다. 정부수립 60년을 맞은 해였는데, 현재까지 모두 21점의 태극기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였다. 그중 3점의 태극기는 국가 보물로 지정하였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데니에게 준 태극기 선물을 후손이 한국에 기증하였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하나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김구 주석이 1941년에 제작, 서명하여 ‘매우사 신부’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 보존되어 왔다. 세 번째는 “진관사 태극기”인데, 서울의 진관사 칠성각 벽체에서 발견, 항일 의지가 강했던 백초월 스님이 만세운동 당시 일장기를 개조하여 만든 귀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기는 ‘태극기(太極旗)’이다. 조선 국왕을 상징하는 ‘태극팔괘도’를 변형하여 제작한 것이다. 임금이 1882년에 일본으로 가는 수선사 박영효에게 하명하여 고안되었으므로 태극기 창제자는 조선 26대 왕인 고종이다. 당시 일본 일간지 〈시사신보〉는 1882년 10월 2일자에 크게 보도하였고, 그 다음날에 박영효는 부산행 배편에 ‘상께 명령을 받았다.’면서 임금께 치계(馳啓)하였다. 이를 근거로 하여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에 조선 국기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규격이 통일되지 않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가 존재해 왔다. 지금의 태극기는 1948년 7월 12일, 정부수립을 앞두고 마련한 국기 표준안에 따른 것이다. 흰색 바탕에 태극문양과 네개의 괘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로 생명을 얻고 발전한다는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검은색의 ‘4괘’를 ‘건곤감리(乾坤坎離)’로 부르지만 ‘건감곤리’, 즉 건괘(3개, 하늘), 감괘(5개, 물), 곤괘(6개, 땅), 이괘(4개, 불)를 좌상에서 시계방향으로 배치한다.

태극기는 국가 정신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다루어도 안 되고, 정파적 집회에서 사용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이 소중한 태극기의 역사는 ‘송명호’라는 소신 있는 공무원이 중심이 되어 정립하였다. 태극기들의 애환이 문화재로 거듭날 때도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이 글도 그가 보내 준 <문화재 태극기>란 전자책을 담은 USB를 보내 준 덕분에 가능했다. 정성껏 쓰긴 했으나 태극기 박사인 그에 비하면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드는’ 격이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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