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물의 변신
깜장물의 변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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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반백을 넘으니 머리카락이 전보다 더 많이 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특히 계절이 바뀔 무렵에는 더 심해져 속상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에 잔주름도 하나씩 느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 샴푸의 효과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문득 ‘마지막에 커피 물로 헹구면 훨씬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지인들과 같이 마시다가 남은 커피를 냉장 보관해두었다가, 머리를 감을 때 데워서 사용했다. 얼마간 그렇게 하다가 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말린 커피 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내린 커피 물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효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이 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나의 머리카락은 다른 이들보다 더 가느다란 편이어서 머리숱이 더 적어 보인다. 그런 탓에 머리숱이 풍성한 사람을 보면 훨씬 매력이 있어 보여 은근히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전보다 머리카락이 덜 빠지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흡족하다.

머리카락이 굵어 풍성해 보이는 사람은 파마를 안 해도 어색하지 않고 은근한 끌림이 있다. 특히 긴 생머리가 바람결에 날릴 때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인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새치가 빨리 생겨 인공색소로 물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오십 중반을 넘어서도 흰 머리카락이 아직 열 개 안쪽으로 적은 편이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니 이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몇 해 전 친정어머니가 무릎관절 수술과 손가락 수술을 받은 후 항생제를 많이 든 탓인지 머리카락이 반쯤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 당신은 거울을 볼 때마다 “아이고. 내가 아무리 늙은 할매지만 이래 갖고 우짜겠노. 무릎 다 낫고 나면 친구들하고 놀러 가야 하는데” 하며 실망스러워했다.

그때 머리를 감고 나서 마지막엔 커피를 섞은 물로 헹궈 보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다급했던지 바로 실천에 옮겼다. 한 달쯤 지났을까, 빠지던 머리카락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커피는 마시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참 신기하데이. 우리 딸 똑똑하네” 하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오십 중반을 넘어선 남편도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아침나절에는 욕조며 세면대, 욕실 바닥에 까만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커피 물로 헹궈 보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좀 거추장스러운 듯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났다. 친정어머니가 큰 효과를 본 것을 알고는 날마다 커피 물로 헹구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이십일쯤 지나자 시나브로 효과를 보았는지 빠지는 머리카락 수가 눈에 보이게 줄었다. 이젠 탈모로 고민하는 지인을 만나면 커피 물로 머리를 헹구라고 적극 권한다니, 홍보대사라도 된듯하다.

커피 찌꺼기를 바람 잘 통하고 햇볕 좋은 곳에서 말린 후 냉장고, 장롱, 신발장, 자동차 같은 곳에 두면 냄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이것을 작물에 주면 훌륭한 천연비료가 된다. 촘촘한 체에 걸러서 가라앉은 고운 커피 찌꺼기는 환경을 살리는 주방세제로도 손색이 없다. 거기에다 식초를 섞어서 쓰면 소독 효과도 있고, 그릇을 씻을 때는 기름기 제거에도 좋고, 수돗물 사용량을 반으로 줄일 수도 있다. 흔히 사용하는 주방세제는 아무리 잘 헹구어도 인체에 조금은 흡수될 수 있다니, 이만하면 커피 찌꺼기는 효자 중의 효자가 아닐까. 깜장물의 재탄생이 모발의 건강을 지켜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눈부신 발견이고 선택인가. 오늘도 커피 향 그득한 우리 집이 참 평화롭게 느껴진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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