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 드라마 ‘살인자o난감’
[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 드라마 ‘살인자o난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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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살인자o난감’의 한 장면.

'스포일러가 살짝 있습니다.'

세상에 죄인, 그러니까 악당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면서 경찰서는 한 번도 간 적 없는 인생이라도 그는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原罪)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법(法)이라는 건 그저 질서유지를 위해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고, 그런 법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더라도 크든 작든 누구나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악당일수밖에 없다. 몸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면 낫기라도 하지, 마음의 상처는 오래갈뿐더러 나았는지 확인조차 잘 안된다. 더 아프고. 법이 처벌하지 않는다고 어찌 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모든 인간은 그냥 악하다.

그렇다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최악이라 할 순 없다. 다들 그러고 사니까. 살인 정도는 해야 그래도 최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헌데 살인도 사실 평가가 다양할 수 있다. 한 명을 죽이면 그냥 살인자지만 열 명을 죽이면 연쇄살인마가 된다. 연쇄살인마가 최악이라면 한 명을 죽인 살인자는 그냥 악이거나 차악이 된다. 웃긴 건,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을 죽인 자가 가끔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바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차이다.

어찌 됐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인류를 죽음으로 내몬 히틀러를 최악이라 규정하면 연쇄살인마는 최악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연쇄살인마는 차악으로, 살인자는 그냥 악으로 강등된다. 그렇다면 히틀러보다 더한 최악은 없을까? 있지 왜 없어. 중생대 공룡이 멸종했던 것처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를 전멸시켜버린다면 히틀러보다 더한 최악이 아니겠는가. 물질인 소행성을 악하다 할 순 없다고요? 어쨌거나 최악의 상황인 건 맞잖아요. 이쯤 되니 앞서 처음으로 언급한 그냥 악들은 오히려 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살인자, 연쇄살인마, 히틀러(전쟁), 소행성처럼 사람을 해치는 건 아니니까.

헌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그(것)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 것. 하다못해 평생을 살면서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조차 들을 일이 사실 없다. 하물며 연쇄살인마와 히틀러, 소행성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거의 별나라 이야기다. 해서 좁게 보자면 말과 행동으로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흔하디 흔한 그냥 악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나쁜 최악이지 않을까. 악(惡)을 분류하는데 있어 가로세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참 난감하다, 난감해.

그렇다. 밑도 끝도 없는 지금까지의 이 글이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선이든 악이든 정확히 규정할 수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측정이 불가하다. 마치 미시세계에서 전자(電子)의 운동량은 측정할 수가 없듯이. 굳이 범죄까진 아니더라도 고의든 과실이든 살면서 타인에게 마음의 상처 한 번 안 주고 사는 사람은 없는 만큼 우린 모두 최소한 그냥 악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제목부터 애매한 <살인자ㅇ난감>은 그걸 전제로 깔고 보면 그 깊이를 좀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작 만화 작가에 따르면 ‘살인자’와 ‘난감’이라는 단어 사이의 ‘ㅇ’은 보는 사람이 읽기 나름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ㅇ’은 무시하고 ‘살인자 난감’으로 읽게 되더라. 그러니까 살인자라는 악당이 있는데 그에 대한 평가가 난감해지는 영화인 셈. 그렇다. 이 드라마에선 주인공 이탕(최우식)의 연쇄 살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끝까지 이어진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탕의 첫 살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악행인 건 분명하다. 그렇게 이탕 인생으로서는 최악의 순간이었지만 그가 죽인 첫 희생자가 영구미제사건이 될 뻔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드러나면서 결과론적으로는 그리 악한 일이 아닌, 아니 희생자가 더 생길 수도 있는 걸 사전에 차단했다는 점에선 오히려 선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하긴, 나폴레옹은 자국민 병사만 300만명을 사지로 내몰았는데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실제로 이탕에겐 다크히어로나 안티히어로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니 그가 죽인 사람은 모조리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탕이 누군가를 죽이기만 하면 그는 일찌감치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탕을 돕거나 잡으려는 인간들도 선하다 싶으면 악하고, 악하다 싶으면 점점 선해지면서 하나로 특정할 수가 없다.

사실 전자(電子)의 위치와 운동량(속도와 질량)을 측정할 수 없는 건 전자가 너무 작고 가벼워 운동량을 측정하려고 보는 순간, 비슷한 크기의 광자(光子)가 전자(電子)에 부딪혀 움직여 버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미꾸라지를 손으로 잡으려는 것과 같다. 미시세계의 물리학인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선 이걸 ‘불확정성의 원리’라 부른다. 이처럼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최소단위가 측정이 불가한데도 우리 인간들은 늘 뭔가를 하나로 쉽게 규정하려 든다. 누군가는 착하고 누군가는 못 됐다고. 혹은 오늘 정말 최악이었다고. ‘최악’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탕처럼 어쩔 수 없이 살인 저질러봤어요? 혹은 살인마나 연쇄살인마를 만났나요? 아니죠? 게다가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소행성이 지금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으이그. 넷플릭스 2024년 2월 9일 공개. 8부작.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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