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구에 물들다 ③
구채구에 물들다 ③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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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가다 높은 산마루에서 보니 산 아래에 작은 마을과 성이 보였다. 내려가서 보니 큰 마을이었다. 주차장 앞에는 양고기꼬치를 팔았는데 맛있었다.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파는 양념 닭똥집 꼬치와 맛이 비슷했다. 현판에는 송판 고성(송주)이라고 적혀있고 입구에는 당나라 문성 공주와 티베트 왕 손첸캄포의 동상이 서 있었다.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하도 많이 들어 오래 기억에 남는 인물을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동상 아래 비문에는 한족과 장족이 화친을 맺는다는 뜻의 ‘한장화친’이 적혀있다.

티베트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운 손첸캄포가 638년 8월 당나라 황제에게 구혼을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20만 병력을 이끌고 송주를 공략했다. ‘당번송주전쟁’이 일어났고 641년 당나라에서 문성 공주를 보내면서 화친을 맺게 되었다. 문성 공주는 23살로 외모가 출중하고 지혜로운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고 한다. 손첸캄포는 공주가 가져온 서적과 당나라 기술로 달라이라마가 거주했던 포탈라궁을 지었다.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에도 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상이 봉인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를 융성하게 만들어 오늘날까지 문성 공주를 모시는 이유가 되었다.

송주는 구채구를 가기 위해서는 지나가야 하는 길인데 지나치기 쉽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역사적인 장면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고 특히 이백, 두보의 동상도 있었다. 맛집, 기념품 가게, 인력거 투어 등이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꼭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상에 온 듯, 꿈꾸는 것 같았다. 주변에 우리 일행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현재 성벽은 명나라 때 것으로 성 위를 걸어볼 수 있다고 한다. 정해준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오니 모두 차에서 꼬치구이를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보여주니 놀라워했다.

중국 사람들은 황산을 다녀오지 않고는 산에 대해 논하지 말며 구채구를 다녀오지 않고는 계곡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구채구는 중국 사람들에게 관광코스 1위이며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삼천 급 고원의 구릉, 산속에 난 와이자형 계곡, 총길이는 90km가 넘는 협곡이다. 1970년대 벌목공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다. 마을 아홉 개가 깃든 계곡이라는 뜻의 구채구는 수많은 계단식 폭포와 다채로운 호수들로 유명하다. 1992년 세계자연유산에 이어 1997년에는 세계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었다. 해발은 2천~4천m정도로 영상 4도를 유지하는 평균 기온으로 인해 겨울철에도 잘 얼지 않는다고 한다.

먼저 모니구는 송판현에서 15km 떨어져 있었다. 원래 트레킹 코스는 이도해가 입구이고 자갈 폭포 방향으로 출구로 나오면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는 관광코스로 주차장에서 원시 산림 속으로 걸어서 15분 거리밖에 안 되는 자갈 폭포만 보고 되돌아 나왔다. 윗부분은 얼었지만 밀려 내려오는 물살이 얼음을 깨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누런빛을 띠는 석회암 바위 위를 폭포는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직선 폭포가 아니고 층층이 폭포로 신기하기만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탁 트인다고 한다. 정말 속 시원한 물소리와 안구 정화로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해발 5천m가 넘는 민사 산맥에서 엄청난 양의 석회수가 자갈 폭포를 만들고 폭포는 다시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흉내 낼 수 없는 걸작품을 만들었다.

구채구의 자연 그대로의 원시 삼림은 중국 명물 판다의 고향이라고 한다. 원시림 속에 숨어 있는 ‘선녀들의 목욕탕’이라 불리는 구채구는 몸속에 녹아있는 세상의 티끌을 청정한 공기와 숲 향기에 깨끗이 씻겨 나가게 했다. 높은 해발에 각종 가문비나무, 전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었다. 호수 주변에서 정말 특이한 붉은 자작나무를 봤다. 수피 모양이 홍갈색의 얇은 습자지를 덕지덕지 붙은 놓은 듯했다. 빛에 반사된 아름다운 색의 수피가 바람에 흔들렸다. 어릴 때 먹은 종이 과자가 생각나 벗겨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④로 이어짐

김윤경 작가·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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