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대나무’는 풀인가 나무인가?
[조상제의 자연산책] ‘대나무’는 풀인가 나무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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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竹)나무.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이름은 나무이지만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대쪽같이 곧으라고 누가 시킨 것이냐? 속없이 항상 푸르니 내 너를 좋아하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보다 앞서 중국 진(晉)나라 때 대개지(戴凱之)의 <죽보(竹譜)>에 “식물 가운데 대나무란 것이 있는데, 강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으며,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60여년 만에 한번 꽃이 피게 되고 꽃이 피면 죽게 되며 그 씨가 떨어져 6년이 지나면 새 숲이 만들어진다.”란 구절이 있다.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면 대나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반은 나무이고, 반은 풀인가? 겉으로 보기엔 분명 나무로 보이는데. 단단한 목질부(木質部)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무가 되려면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목질뿐만 아니라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해야 한다. 형성층(形成層)? 들어는 봤는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까? ‘부름켜(cambium)’란 말은 들어보았을까? 형성층과 부름켜는 같은 뜻이다. 부름켜는 좀 어려운 낱말 같지만 ‘불어나다’에서 파생된 순우리말이라는 사실. 부피가 불어나는 층이라는 뜻이다.

나무는 제일 바깥쪽에 표피(껍질)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옷이다. 겨울에 추위도 피하고, 감염 등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나무껍질 안쪽으론 체관이 있다. 생김새가 우리 조상님들이 쓰시던 체를 닮았다. 아무튼 체관은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이 주로 줄기나 뿌리로 이동하는 통로이다. 체관 안쪽에 바로 형성층이란 곳이 있다. 이곳이 바로 세포분열을 하여 줄기나 뿌리를 굵어지게 하는 곳이다. 나무가 굵어지게 하는 것을 부피 생장을 한다고 말한다. 더 쉽게 말하면 나무는 이 형성층에 의해 해마다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굵어진다. 그런데 대나무는 형성층이 없어 나이테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나무가 아니란 것이다. 다 아시다시피 대나무는 죽순이 하루에 1m 이상까지도 자라며, 적어도 최대 50여일이면 다 자라고, 자란 뒤에는 더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그러면 대나무의 호적을 한번 살펴보겠다. 대나무는 식물계의 속씨식물문, 외떡잎식물강, 벼목, 볏과(Poaceae), 대나무아과(Bambusoideae)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 초본(草本)이다. 대나무가 다년생 초본이고 벼와 한 집안(family)이라. 상상이 되시는지? ‘초본’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땅 위로 나와 있는 부분이 목질로 발달하지 못하고, 연하고 물기가 많은 풀줄기로 된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러면 대나무는 목질이 발달하고 풀줄기로 된 식물이 아니니 사전상으로는 초본이 아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식물분류학상으로는 분명 벼, 보리, 기장, 옥수수와 같은 볏과 식물로 분류되어 있고, 심지어 태화강에 살고 있는 물억새나 갈대와도 볏과(科 : family) 식물로 한 집안이다. 벼와 대나무가 한 집안이라. 닮은 점은 뭐가 있을까? 천생 꽃이 닮았다. 벼꽃과 대나무꽃을 잘 살펴보자. 그렇게 닮을 수가 없다. 대나무는 키가 수십m나 되고, 벼는 고작 1m 남짓인데 어떻게 이다지도 꽃이 닮을 수 있을까? 한 집안이라 그럴 것이다. 또 닮은 것이 있다. 줄기에 마디가 있고, 마디 속이 빈 것이다. 벼의 줄기를 자르면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다.

그러면 사전상으로는 나무요, 분류학상으로는 초본 식물인 대(竹)를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대’로 불러야 할까, ‘대나무’로 불러야 할까, 아니면 ‘대풀’이라고 불러야 할까? 국립수목원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서 대나무를 검색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대나무는 검색되지 않는다. ‘대나무’라는 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나무아과’에 속해 있는 모든 대를 총칭해 대나무라고 부를 뿐이다. 여러분은 대나무를 어떻게 부르겠는가. 지금은 ‘대’나 ‘대나무’로 부르고,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다년생 상록초본이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조상제 ‘울산 민물고기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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