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 ‘안전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퍼즐
[안전파수꾼] ‘안전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퍼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5 2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나라의 수준은 자국(自國) 국민이 결정한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경제선진국이 된 것도 전 국민의 지식 및 기술 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결과다. 그런데 안전은 아직 멀었다. 관련된 법과 제도의 정비, 시스템 구축 등은 선진 수준에 이르렀지만, 거기에 걸맞게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OECD 중 최하위이고, 교통안전 수준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특히, 노인 10만명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년째 OECD 1위의 불명예를 지키고 있다. 또한, 어린이 보호구역 및 교차로 우회전 교통사고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고는 근절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고 원인은 설비 문제보다는 개인의 부주의와 방심이 더 크다. 즉, 개인의 행동 양식이 바뀌지 않으면 근절되지 않는다.

올해 1월 베트남 다낭의 한 시장을 방문했다. 소문대로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는데 문제는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이 뒤섞여 도저히 길을 건너기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건널목 보행자 신호에도 불구하고 차량은 신호를 당연히 무시하고 진입했고, 오토바이는 아예 무질서 그 자체였다. 적응이 안 된 우리 일행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보행자 보호란 사치스러운 이상일 뿐이다. 이게 필자가 겪은 베트남 교통문화 수준의 단면이다.

작년에 방문한 미국은 대조적이다. 태평양 연안의 관광지라 차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차량은 무조건 정지한다. 횡단보도가 아니어도 보행자가 건너면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다. 보행자가 많으니 차량은 굼벵이 걸음이고, 차가 한없이 늘어서도 경적이나 불평하는 운전자가 없다. 즉, 교통약자 보호가 생활화되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런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도로 여건이나 시스템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시스템은 대체로 노후화되고 일본의 도로는 좁아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수준은 어떨까? 안전시스템과 인프라 수준은 손색이 없으나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대부분 인재(人災)에 가깝다. 사고가 나면, 우리는 책임 소재를 따지고 설비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한다. 스쿨존 사고나 교차로 우회전 사고는 운전자의 의식과 행동 양식이 바뀌어야만 근절될 수 있다. 우회전하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사각지대라서 못 봤다”고 하거나, 스쿨존에서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변명은 우리 수준이 아직 후진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자동차는 구조적으로 사각지대가 있으며, 스쿨존은 말 그대로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왜 안전선진국이 무조건 ‘STOP’ 하는지 잘 새겨야 한다. 바로 성숙한 안전문화, 마지막 퍼즐이다.

그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시급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교통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다. 우회전 보행자 사고나 스쿨존 사고 등은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 문화가 정착되어 있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각지대 사고를 줄이겠다고 횡단보도를 수정하는 등의 물리적 개선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각지대란 구조적이어서 없어지지 않으니 무조건 정지해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 이 당연한 것을 지나쳐도 안 되고 뒤에서 ‘빵빵’거리면 더욱 안 된다.

둘째, 엄정한 법 집행과 온정주의 탈피다.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사소한 반칙의 남발에 있다. 오토바이의 무질서와 횡단보도 정지위반 차량 근절이 최우선이다. 어디를 가나 신호위반과 난폭운전을 일삼는 오토바이를 제지하는 곳은 거의 없고,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하는 차량도 드물다. 사소한 반칙에서 시작되어 무관심과 온정주의로 고착화한 지 오래다. 엄정한 법 집행으로 자발적으로 지켜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안전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계지점에 와 있는데 그 마지막 퍼즐이 이것이다.

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 및 재활용 시스템 구축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진 환경시스템을 만든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이처럼 우리 내부에서 잘 벤치마킹하면, 우리도 빠른 시간 안에 ‘안전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고경수 NCN 운영위원·前 삼성비피화학 전무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