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떼까마귀의 삶
농부와 떼까마귀의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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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떼까마귀는 농경지를 바탕으로 가을의 계절적 만남을 반복한다. 먹는 음식과 찾는 먹이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농부는 벼를 찧은 쌀로 밥을 지어 먹지만, 떼까마귀는 추수 뒤에 떨어진 낱알을 쪼아 먹는다.

떼까마귀는 매년 10월에 울산을 찾는다. 지난 14년간(2010~2023년)의 관찰 기록에서는 13일~18일로 확인됐다. 떼까마귀는 중국 중부가 서식지, 러시아 동부가 번식지이고 우리나라는 월동지이다. 떼까마귀는 문헌에 당아(唐鴉), 한아(寒鴉) 등으로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당나라, 추운 계절과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기록은 현재까지도 유효해 떼까마귀가 이동성 철새임이 확인된다.

떼까마귀는 울산에서 약 180일간(10월~4월) 겨울을 난다. 굳이 울산을 찾는 것은 이곳이 의식주가 해결되는 안전한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삼호대숲의 잠자리, 울주군 지역의 먹이터 등은 안전한 생태환경을 보장한다. 하지만, 2019년을 정점으로 매년 마릿수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나 걱정스럽다.

국립생태관은 그 수가 2020년 11만 300마리, 2021년 8만 6천940마리, 2022년 8만 9천320마리, 2023년 7만 448마리라고 발표했다. 2024년에는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중국 청대(淸代) 시인 사신행(査愼行, 1650~1727)의 시에는 현실을 반영한 표현이 적지 않다. 농부와 떼까마귀가 함께하는 시도 그중의 하나다. 소가 앞에서 머리를 든 채 쟁기를 끌고 가고 떼까마귀가 그 뒤에서 머리를 숙여 먹이를 주워 먹는 광경을 묘사했다. 떼까마귀가 낱알을 주워 먹는 생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는 제목을 ‘아습입행(鴉拾粒行)’이라고 붙였다.

“소는 앞에서 머리 들고 쟁기 끌고/ 떼까마귀는 뒤에서 머리 숙여 주워 먹네/ 소가 어찌 떼까마귀를 위해 쟁기질을 하겠나/ 떼까마귀가 소 덕분에 낱알을 주워 먹는 거지/ 농부는 소 먹인다고 언제나 굶주린 고통은/ 떼까마귀 무리가 배불리 먹고 동서로 날아다니는 것과 같지 않네” (‘鴉拾粒行’)

이 시를 통해 청대 가을 경작지의 보리 갈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농부의 삶과 떼까마귀의 채식 생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소는 쟁기를 끄는 힘점이 어깨에 모이므로 자연히 고개를 들게 된다. 반대로 떼까마귀는 벼를 추수한 뒤 떨어진 낱알을 쪼아먹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쟁기 뒤를 따라 걷게 된다. 떼까마귀는 농경지를 찾아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고 살기 때문에 울산의 농경지 변화와 떼까마귀 도래의 상관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년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에 대한 과학적 관찰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떼까마귀 마릿수를 파악하면 그해 번식지의 생태환경 변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번식지의 생태환경 변화를 추정하는 것은 울산에서 백로나 떼까마귀를 이용한 생태관광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진 날 나막신 찾는다’라는 옛말은 ‘준비가 안 된 것’을 말하고, ‘방귀, 질 나자 보리 양식 떨어진다’라는 옛말은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우리나라에서 백로와 떼까마귀에 대한 포괄적 생태계 연구가 20년 이상 이어져 온 지역은 울산이 유일하다. 다만 아직도 이들 자료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떼까마귀는 돈을 안 들이고도 돈을 벌게 해주는 울산의 독창적 조류생태 콘텐츠의 하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마치 ‘소가 닭 쳐다보듯’ 무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공연스러운 걱정일까?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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