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연구전략전문가’란 말, 들어 보셨나요?
[아침향기] ‘연구전략전문가’란 말, 들어 보셨나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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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많은 사람이 따라 했던 대사다. 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도 P(인식형)와 J(판단형)의 차이에 관한 토론은 늘 계획적인 성향인 J의 우월함으로 끝맺을 때가 많다. 이처럼 ‘계획’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이다. 계획과 전략 모두 일이 진행되기에 앞서 수립하지만, 전략은 계획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에 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개발을 하는 연구소에는 흰 가운을 입고 시약병 가득한 방에서 실험하는 과학자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규모가 있는 연구소에는 연구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전략을 세우는 연구전략 전문가, 즉 R&D 전략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필자는 현재 연구본부에서 인턴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화학을 전공했으나, 실험을 하지 않고 기술개발 분야에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전략은 단순히 새로운 핸드폰 모델이 나오고 자동차의 조작이 쉬워지게 하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개발에서의 전략이란 ‘Why’라는 질문을 앞에 두고 과학기술을 서술해 나가는 영역이다.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지구를 지켜나가는 미래에 관한 고민을 과학기술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두루 필요한 영역이다.

나는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과학자를 존경한다. 혹시 몰랐다 하더라도 노벨상을 만든 사람이겠거니 이름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그는 단순히 돈이 많아서 노벨상을 만들지는 않았다. 노벨은 노벨상보다 먼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새 문명을 건설해 가는 공사에 이바지하게 됨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에 사용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것에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유언으로 자기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학문 외에도 평화 부문까지 공헌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게 했다. 그것이 바로 노벨상이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 “한평생 괴로운 일이 참 많았겠구나” 싶으면서도,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을 실천한 점에서 존경하고 본받고 싶다.

자신의 발명이 인류에게 해악을 미치게 한 결과로 후회한 과학자는 비단 노벨뿐만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이바지한 아인슈타인, 비료와 폭탄의 합성에 사용된 아질산암모늄을 개발한 프리츠 하버 등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인턴을 시작한 후 그들을 떠올릴 때면, 그들이 R&D 전략 전문가와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들의 연구 결과물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프로세스를 조절했다면 발명의 결과물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과학기술 발전을 꿈꿔왔던 사람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나 역시 과학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게 과학기술 발전은 일상에 편리함을 가져다줘 좋은 동시에, 전산화되어가는 세상 탓에 병원에서 수납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얄밉기도 했다. 우연히 지원했던 한국화학연구원 정밀화학연구센터에 마침 연구전략 박사님이 있어서 이 길을 걷게 되었다. 외고를 졸업해 영어를 가장 잘하고, 화학이 어려워 경영학을 부전공한 내게는 참 흥미로운 분야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접근으로 바뀌고 있다. 기술은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구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기술 중심에서 가치 중심의 R&D 전략 수립이 더 요구되는 시대다. 연구자 만큼이나 연구 전략가가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 필자는 이 일을 향해 계속해서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새롭게 가고자 하는 길에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있는 지금, 이 직군을 만난 것이 감사하고 내 소개를 하게 돼 영광이다.

박예루 인턴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 울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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