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수업
질문이 있는 수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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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시험은 명확한 답이 있다. 학생들은 문제를 읽고 정확한 답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전제로 삼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실제 삶의 영역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인간의 삶 자체가 100% 완벽한 답과 오답으로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와 같은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잘 모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답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정답과 오답 두 가지 외에도 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함을 알고 정답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익혀야 한다.

정답이 무엇인지 찾는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질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누구나 인류의 거의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문제의 정답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궁금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Chat-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GPT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질문 그 자체를 할 수는 없다. 결국 GPT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올바른 질문을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질문이 정답을 찾아가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질문 능력이 다 똑같지는 않다. 더 나은 질문, 더 좋은 질문이 있듯이 질문하는 능력도 수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질문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철학함(doing philosophy)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다른 분야와 달리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다. 서양 철학의 주요 분과인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인식론이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본질을 묻는 질문이 형이상학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윤리학이며,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묻는 질문이 미학인 것이다.

울산시교육청에서는 ‘질문이 있는 수업’을 2024학년도 울산교육의 역점추진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질문하는 학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고, 질문을 통해 자기주도적인 앎의 주체로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탐구 과정을 경험한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학습 과정과 삶을 성찰하는 도구로 질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이는 단순하게 질문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탐구의 경험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실 속에서 삶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질문, 즉 철학적 질문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공동의 탐구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 함께 활동하는 선생님들과 현장 연구를 통해 철학적 탐구공동체에 기반한 질문이 있는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이를 적용한 캠프를 운영할 계획이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이 모여 ‘질문이 있는 수업’으로 현장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질문이 있는 수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질문이 있는 수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종의 탐구 과정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질문이 참 중요한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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