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海山의 얼기설기] 신구와 나훈아와 김혜수
[徐海山의 얼기설기] 신구와 나훈아와 김혜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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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영화는 이따금 보지만, 연극은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된다기에 예매 전쟁을 뚫고 티켓을 확보했다.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시그널이 연극의 관심을 대변했다.

연극 자체는 워낙 유명하기에 이런저런 글과 영상을 통해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연극에 대한 흥미도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무엇보다 주연 배우인 신구 선생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스며있었다. 36년생으로 올해 87세인 신구 선생도 한평생 연기 인생을 살아왔지만,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욕심내고 싶은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황혼을 한참 넘기고 은퇴해도 무방한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에 도전한 것이다.

급성 심부전증으로 심장박동기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무대에 오른 신구 선생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욕심을 냈다”라고 말했다. 에스트라공을 맡은 신구는 두 시간 넘게 신들린 듯한 명품 연기를 펼쳤다. 달인, 거장, 장인이라는 칭호와 찬사도 부족했다. 연기의 신(神)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열연이었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 인사를 나온 신구에게 관객들은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로 응답했다. 고도가 누구이며,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를 보느냐 만큼 각양각색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연극을 보기 전에 책을 읽었지만, 선뜻 이해할 수 없었고, 무척 난해했다. 작가인 사무엘 베케트 역시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내가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신구는 “나에게 고도는 희망이다”라고 밝혔다.

‘희망(希望)’이라는 말처럼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도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라고 희망을 정의했다. 어쩌면 희망은 탄탄하게 구축해 왔던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남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떠밀려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멈춤과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희망의 원천이자 동력이 아닐까.

은퇴 걱정에 휩싸인 신구 선생보다 약 10년이 어린 트로트 황제 나훈아의 전격적인 은퇴 소식은 팬은 물론 국민에겐 다소 뜻밖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대에서 늘 열정적인 노래와 이벤트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나훈아였기에 데뷔 58년 만에 ‘마지막 콘서트’ 알림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마웠습니다’라는 편지에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라면서 2024년을 은퇴의 해로 예고했다. 은퇴 선언에 아쉬움을 표하는 말과 글이 줄을 이었고, 재고를 요청하는 팬들의 성화도 빗발쳤다. 그러나 현재로선 나훈아의 결심은 요지부동일 가능성이 높아 더욱 아쉽다.

나훈아에 앞서 ‘청룡의 여신’으로 불렸던 김혜수도 30년간 독무대였던 청룡영화제의 사회자 자리를 내려놓았다. 1993년부터 2023년까지 청룡영화제는 김혜수가 상징이었고, 그녀 덕분에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청룡영화제에서 김혜수의 말과 옷 등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화제의 중심이었다. “떠나보낼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그 순간이 있고,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고별사를 남겼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시 ‘낙화’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신구와 은퇴를 예고한 나훈아, 오랫동안 머물렀던 자리에서 물러난 김혜수, 세 사람의 공통점은 아름다운 뒷모습일 것이다.

徐海山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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