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아름다운 거짓말 下
[아침향기] 아름다운 거짓말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3.0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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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 한번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까맣게 잊은 채 동일한 사람을 두 번 죽었다고 하는 바람에 그만 거짓말이 탄로나고 말았다.

세상이 다 아는 거짓말이 있다. 정치인은 선거철만 되면 자신이 지키지도 못할 공약(公約)을 남발한다. 하지만 그들이 한 공약이 매번 공약(空約)이 돼 버린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랫사람들에게 청백리(淸白吏)를 주장하면서도 그 자신은 부정축재(不正蓄財)를 하곤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미는 관리의 거짓말 역시 쉽게 용서가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세상에는 들으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거짓말도 많이 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신의 몸을 인당수에 던지러 가면서도 아버지에겐 남의 집 수양딸로 간다고 거짓말을 한 심청이의 갸륵한 거짓말은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던 것 같다.

또 나무꾼이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감추어 놓고 모른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선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따금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거짓말을 듣게 되어도 싫지 않을 때가 있다.

“젊어지셨습니다. 혹은 예뻐지셨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술을 마시고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이 참다못해 결국 아버지를 죽게 한 사건을 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법정에서 남편을 죽게 한 사람은 아들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들의 앞날을 걱정한 어머니의 눈물 어린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다.

가난하게 살아오던 한 가족이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살코기만 골라주고 자신은 늘 기름 덩이와 껍데기가 더 맛있다며 먹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돼지고기가 몹시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이 급히 달려가 돼지고기를 사 왔다. 아들이 돼지기름 덩이와 껍데기만 볶아 어머니 앞에 갖다 드렸다. 그러나 그것을 본 어머니는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럽게 울기만 했다.

놀란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가 늘 좋아하시던 돼지 껍데기와 기름 덩이를 맛있게 볶았는데 얼른 드시지 않고 왜 울기만 하세요?”

마침내 어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돼지기름 덩이와 껍데기만 좋아한다고 말했던 건 너희들을 배불리 먹게 하려고 한 거짓말이란다.”

그제서야 놀란 아들이 급히 달려가 살코기를 사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가장 눈물 어린 거짓말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거짓말과 참말을 동시에 하고 산다. 거짓말이 참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참말이 거짓말같이 들릴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거짓말과 참말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나는 거짓말을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오늘 내 머리에 흰 머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를 생각해 거짓말을 하는 외손녀에게 아름다운 거짓말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이를 두고 ‘어른의 아버지라’란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외손녀처럼 아름다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증거이다.

갈수록 말은 많아지지만 아름다운 거짓말은 점점 줄어가는 것 같다. 오늘 듣게 된 다섯 살 난 외손녀의 거짓말에는 무지갯빛이 영롱했다.

 < 끝 >

최정원 <울새가 노래하는 곳> 저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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