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향기] 아름다운 거짓말 上
[아침 향기] 아름다운 거짓말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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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머리에는 하얀 머리가 하나도 없어요.”

그것은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올해 다섯 살 된 외손녀가 미장원 놀이를 한다면서 빗으로 내 머리를 빗기다 갑자기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녀석의 두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녀석이 눈물을 삼키려고 눈꺼풀을 몇 차례 껌벅였으나 기어이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끔 머리가 은사실같이 하얀 친정어머니가 집에 와 계시기도 하고 때론 녀석의 손을 잡고 친정으로 찾아가서 뵙기도 한다. 그때마다 녀석은 친정어머니를 ‘상 할머니’라 부르곤 한다.

오늘도 녀석을 데리고 친정집에 갔다. 여느 때와는 달리 머리가 하얀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가느다랗게 말을 했다.

“할머니, 상 할머니가 왜 저렇게 됐어요?”

“왜? 상 할머니가 어떠신데?”

“머리에 까만 머리가 하나도 없어.”

“응. 그건 말이다. 사람이 오래오래 살면 몸이 늙게 되는데 까맣던 머리카락도 따라서 하얗게 되는 법이란다.”

내 말이 끝나자 녀석은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녀석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절대로 안 늙을 테야. 할머니도 절대 늙지 마.”

‘인즉어(人卽語)요. 어즉인(語卽人)’ 바꾸어 말하면 언어는 인격이요. 인격은 언어의 주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말을 해야 한다. 자라면서 바른말 즉 정어(正語)만 써야 한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나 자신이 거짓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남이 하는 거짓말을 듣게 될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거짓말에도 질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듣는 이는 물론 거짓말 자체에도 격이 있다. 즉 거짓말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추한 것도 있다. 빛깔 또한 다양하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듯 영국에서도 죄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 하고 죄가 되는 거짓말을 ‘새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불러오듯 자칫 말을 잘못하게 되면 큰 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 풍파를 만나면 상처를 입게 된다. 몸에 상처를 입게 되면 반드시 흔적이 남듯 악의적인 거짓말은 듣는이의 가슴에 상처를 남게 한다.

이와는 달리 아름다운 거짓말은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그 자신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공연한 거짓말을 함으로써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격려하는 마음에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자신의 이기심은 억제하는 대신에 남을 격려하는 품성이 착한 사람에게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외손녀가 내 머리에 흰 머리카락을 보고도 하나도 없다고 거짓말을 할 때처럼 말이다.

거짓말에 대해 말하다 보니 불현듯 머릿속에서 선배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평소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삼아 화투 놀이를 즐겨 했다. 일과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를 치다 새벽녘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가까이 지내는 친구 어머니의 상가에서 밤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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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울새가 노래하는 곳> 저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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