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海山의 얼기설기] 6만1천450원
[徐海山의 얼기설기] 6만1천450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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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억(記憶)과 망각(忘却) 중 어느 것이 힘이 더 셀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본다. 기억나지 않을 때도 고통스럽지만, 망각하지 못할 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어제 일은 고사하고, 조금 전 무엇을 해야 했었는데 그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무시로 찾아온다.

오랜 시간과 많은 경험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기억은 있다. 뚜렷하게 각인된 기억은 송곳처럼 뾰족하다. 세월이 흘러도 부식되거나 마모되지 않는다. 비슷한 사건과 계기를 접하면 더 삐죽하게 튀어나온다. 많고 많은 기억 중에서 30여년이 흘렀는데도 가슴을 후벼팠던 말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 처음으로 알바(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이 컸고, 조금 포장을 한다면 직업의 세계를 미리 체험하고 싶었다. 역 광장 한켠에 관광 안내판을 세우는 일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작업의 곁에서 시멘트 포대를 나르고, 흙과 벽돌을 옮기는 잔심부름 정도였다. 여름이라 온몸은 금세 땀에 흥건히 젖었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고, 해보지 않은 일을 하니 힘도 들었고, 피곤했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그래도 방학에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작업 현장의 바로 앞 맞은편 의자에는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던 젊은 엄마가 작업하는 우리 쪽을 응시했다. 그러고선 아직도 내 귀에 또렷이 남을 한마디를 남겼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면서 어린 아들에게 “저거 봐라,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고. 어린 아들은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씁쓸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망각하고 싶은 말을 꼽으라면 단연 일등이다. 아이 엄마의 머릿속에는 현장에서 몸을 쓰고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이 노동으로 밥을 먹고, 돈을 벌며, 꿈을 현실로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노동(勞動)과 노동자(勞動者)의 위치는 여전히 차가운 윗목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다시 소환된 것은 알바를 처음 경험한 딸내미 때문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와 컨벤션센터의 결혼식을 보조하는 예도 알바를 했다. 그것을 위해 신발도 새로 장만했다. 첫 번째 알바에 들떴고, 설렘과 긴장 속에 알바를 기다렸다. 관련 서류도 제출하고, 시급 1만2천원과 4시간당 1시간의 휴식 시간을 갖기로 계약에 합의했다. 전날 무임금의 예행연습을 거쳐 드디어 1월 20일 7시간 동안 알바를 뛰었다. 휴식 시간은 단 30분이었고, 계약에 없던 청소마저 시키려 했으나 컨벤션에서 일하던 친구 언니의 제지로 그것은 하지 않았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부당함에 실망한 딸내미를 또 한 번 절망시킨 것은 근로의 대가, 즉 알바비 정산에 따른 컨벤션 측의 무성의였다. 근로기준법에는 14일 이내 근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알바비는 근로를 제공한 지 19일이나 지난 2월 8일, 그마저 2천원이 깎인 시간당 1만원에 세금을 공제한 6만1천450원이 통장에 입금됐다. 어린 학생이고 청소년이라고 무시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나의 사례로 전체를 규정지을 순 없겠지만, 말하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비일비재할 것이다. 교육부 장관도 노동부 장관도 또 그 윗선도 틈만 나면 약자 보호와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첫 알바에서 불쾌한 기억을 경험한 딸내미에게는 그저 어른들의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 학교 밖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책임과 의무가 어른들에겐 있다. 쓰릴 때도 있지만, 기억(記憶)은 힘이 세다. 기억력(記憶力)은 있어도 망각력은 없다.

徐海山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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